첫사랑을 하는 것과 첫사랑이 되는 것
살아오면서 내가 ‘첫사랑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떤 남자들은 여자에게 첫사랑이 되는 것을 꿈꾸곤 한다. 하지만 첫사랑을 ‘하는 것’과 ‘되는 것’은, 결국 보통의 연애보다 훨씬 큰 각오를 필요로 한다.
나는 20대부터 연애 경험이 제법 많았다. 2년에 가까운 연애부터, 사귄 지 3시간 만에 차인 짧은 연애까지 다양했다. 3시간 만에 차인 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창피하다. 사회성이 부족했던 나는, 여자가 어떤 말을 싫어하는지조차 잘 몰랐던 것 같다.
30살 무렵, 24살의 여자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그녀는 극도의 회피형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두 달에 한 번꼴로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종교적 차이 때문에 자주 울곤 했다. 나는 그때 종교 차이가 그렇게까지 큰 문제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독실함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신앙’을 했다면, 어쩌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그녀가 무엇을 회피하고 싶었는지 나는 오랫동안 분석해보았다. 두 달마다 깊어지는 자신의 마음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혹은, 나는 이성적이라 화를 잘 내지 않았기에, 언제나 자기만 서운해하는 모습이 미안해서 도망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상처를 주려다 결국 스스로 상처받는 모습이었다.
반면, 연애 경험이 조금 있는 여성들은 달랐다. 웬만한 일에는 쿨하게 넘어갔다. 연락이 안 되면 “일하나 보지”, “바쁘겠지” 하고 넘어가고, 데이트 시간이 없으면 본인이 보러 왔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어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짧은 나의 통계로는, 이런 태도는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즈음에 갖춰지는 듯했다.
결국 첫사랑을 ‘하는 것’과 ‘되는 것’은 모두 각오가 필요하다. 만약 누군가 첫사랑의 자리에서 사랑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라 ‘영원에 가까운 기다림’을 감수하겠다는 마음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