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하나님 앞에 너를 올려두고, 너를 위해 기도할게.

by 삶 집착 번뇌

여름 성경학교를 열었다. 아마 올해 교회를 그만두게 된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여름으로 남을 것 같다.


나는 원래 내 바운더리 안의 사람만 챙긴다. 왜냐하면 나는 신이 아닌 인간이고,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 외에는 크게 챙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앞서 말했듯이 내 한계 때문이다.
둘째, 내가 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면, 그 사랑이 또 다른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셋째, 내가 누군가에게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에너지만 줄 수 있도록 내 상태를 관리하고, 그 바운더리를 우리 반 아이들에게만 분명히 정해두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인사하거나 잠깐 챙겨주는 정도에 그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나에게 먼저 애정을 보여주는 아이들에게는, 그 애정 이상을 돌려주고 싶다.


그런데 여름 성경학교에서는 모든 반과 배치가 바뀌어 버렸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으로 흩어졌고, 나는 멀찍이서 그 아이들을 응원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던 중, 유달리 눈에 띄는 아이 한 명이 있었다. 질문이 많고 활발했지만, 모두가 그 아이를 ‘문제아’로 낙인찍고 있었다. 심지어 그 아이의 친삼촌이 “문제 일으키지 말라”며 시작 전부터 경고를 하는 바람에, 아이는 성경학교 시작도 전에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이 울렸냐”며 나를 다그쳤다. 참 착한 아이들이다.


울음의 원인을 알아낸 후, 나는 그 아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오히려 자유롭게 두자, 그 아이는 스스로 통제 안으로 들어오며 더 잘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 아이는 단지 관심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관심은 여러 오해와 왜곡을 거치며 아이를 사지로 몰아넣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던 이불 정리까지 도와주었고, 대장 선생님의 부재로 내가 리드하게 된 덕분에 우리 조의 ‘모범 아이’로 그 아이를 뽑을 수 있었다. 각 반마다 튀는 아이가 있었을 텐데, 그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덕분에 우리 반이 1등을 차지했다. 최악으로 낙인찍힌 아이가 1등 반의 중심이 되는, 작은 역전이 일어났다.


그날 저녁, 선생님들이 아이 한 명씩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주저 없이 그 아이를 선택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혹시 이 아이 안에 하나님이 자리하고 계시다면, 이 아이가 더 이상 외로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사람들의 경멸이 아니라 사랑을 받으며 자라게 해주세요.”


무신론자인 나에게 기도는 낯선 일이었지만, 이곳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경의와 존중을 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했다. 나에게는 신이 없지만, 너의 하나님 앞에 너를 올려두고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마음으로.


그 이후, 그 아이는 나를 볼 때마다 흘끔흘끔 눈치를 보았다. 무서웠을까? 고마웠을까? 아니면 서툰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던 걸까.


며칠 전,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생을 데려와 내 옆에 앉았다. “너무 귀엽지 않아요?”라며 끌어안는 모습이, 마치 어미 개가 가장 소중한 새끼를 자랑하듯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 둘 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성경학교 이후 처음 나눈 대화였지만, 그 아이의 눈빛에는 존경과 사랑이 스며 있었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런 변화가 존 웨슬리가 말했던 ‘성화’가 아닐까. 사랑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그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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