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과 질문을 주고받다 보면 묘하게 가슴이 뛴다. 얼마 전 한 독자가 물었다.
“비판적 사고와 태도가 대립된다면, 그것은 가식 아닌가요?”
짧지만 예리한 질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결국 그것은 상대에 대한 태도, 곧 ‘가식이냐 배려냐’의 문제라고.
이 지점에서 먼저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비판’이란 무엇인가? 흔히 누군가의 꼬투리를 잡고 “그거 아니야”라고 꼬아 말하는 것을 비판이라고 생각하지만, 본래 비판이란 시시비비를 가리는 행위, 곧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비판(批判)’의 한자를 풀어보면 ‘비(批)’는 비평할 비, ‘판(判)’은 판단할 판이다. ‘판’이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라면, ‘비’는 무엇일까? ‘비(批)’의 자형을 보면 ‘손 수(手)’ 옆에 ‘비교할 비(比)’가 있다. 즉, 손에 든 도구로 사물을 비교·평가하는 행위가 바로 ‘비평(批評)’이다. ‘평(評)’은 평가할 평, 결국 비평이란 비교를 바탕으로 한 평가 행위다. 나는 글을 쓸 때 자주 대립구조를 세운다. 그래서 내 글에는 ‘비판적 사고’의 흔적이 짙다. 현대사회가 비판을 불편해하는 이유도 어쩌면 ‘비교’를 싫어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비판적 사고’와 ‘비판적 태도’는 어떻게 다를까? 간단히 말해,
비판적 사고는 ‘비교하는 도구로 평가하는 이성적 생각’이고,
비판적 태도는 ‘비교하는 도구로 평가하는 모습의 정도, 즉 드러나는 태도’다.
좀 더 독자 친화적으로 풀자면, 사고는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태도는 그 생각이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어느 독자는 내게 “비판적 태도와 사고는 엄연히 다르니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생각을 드러내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본질적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핵심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즉 ‘긍정적으로 쓰느냐, 부정적으로 쓰느냐’의 문제이고, 이는 이분법적으로 깔끔히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쉽게 비유해보자. ‘비판적’이라는 칼이 있다고 하자. 이 칼을 요리 도구로 쓸 수도 있고, 누군가를 찌르는 무기로 쓸 수도 있다. 분명 용도는 다르다. 그러나 요리를 하다가 옆 사람이 다쳤다면? 혹은 나를 지키려다가 내가 그 칼에 베였다면? 단순히 ‘요리용 vs 무기용’이라는 대립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결국 이 둘은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정의의 연속선상에 있다.
나의 경우, 문제의 본질은 비판적 사고나 태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배려의 부족’**에 있었다. 나는 비판의 논리에 몰입한 나머지, 상대를 향한 세심한 태도를 놓쳤다. 만약 그때 비판적 사고와 태도를 ‘상대를 향한 배려의 도구’로 사용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지점을 곱씹으며 나 자신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