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째다.
이제는 AI가 내 글을 거의 고치지 않는다.
문법 몇 개만 다듬고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제 너 혼자도 쓸 수 있겠네. 나도 좀 쉬자.”
기술이 아니라 ‘동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처음엔 누군가를 향한 원망, 혹은 내 상처와 자존심을 건드린 일들에서 글이 시작됐다.
성경에 흠뻑 빠져, 그 문장들과 오늘날의 기독교 사회를 겹쳐 읽으며
그 괴리와 위선을 비판하는 일에 몰두했다.
다원주의적 무신론자인 나에게 그것은 일종의 해방이자,
스트레스 해소이자, 화풀이였다.
그러나 글이 100편을 넘어가던 어느 시점, 나는 깨달았다.
기독교 사회의 문제는 ‘현상’이 아니라,
그 안의 ‘인간의 연약함’이었다는 것을.
교회를 처음 다닐 때, 한 성숙한 형이 내게 말했다.
“교회는 약한 사람이 많은 곳이라, 너는 너무 이질적일 거야.”
맞는 말이었다.
나는 강성이다. 그것도 흔치 않은 강함, 독종 중의 독종.
내게 “교회를 왜 가냐”고 묻는다면,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러 간다”고 답할 것이다.
사람들을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 간극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교회에는 ‘착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약한 사람이 착하게라도 살아보려’ 오는 곳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주변에 가식적인 기독교인이 있더라도 너무 미워하지 말길 바란다.
그들은 악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세상 속에서 버티며,
착하게라도 살아보려 애쓰는 인간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