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자분이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철학을 너무 높은 곳에 놓으셨네요. 저는 철학이 참 보잘것없다고 느껴요.”
그 말을 읽는 순간, 나는 잠시 멈췄다.
왜 어떤 사람에게 철학은 ‘헛된 것’으로 느껴질까?
철학은 단지 비판의 언어만은 아니다.
그것은 근원을 향한 사유, 스스로에게 “왜?”를 묻는 용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왜 저 타락한 인간에게 혐오를 느낄까?”
그 이유를 따라가 보면 위선, 무책임, 혹은 아이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가치의 왜곡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왜 위선은 나쁜가?”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왜 상처를 주는가?”
“상처란 왜 피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이어가다 보면, 삶의 근원을 더듬는 일이 된다.
이 지점부터가 바로 철학의 영역이다.
그러나 철학이 학문으로만 남는다면, 그것은 공허하다.
돈벌이를 위한 철학은 성직자가 헌금에 손을 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유가 영혼을 살리는 대신, 체계를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면 그건 더 이상 철학이 아니라 장사다.
반대로 철학이 ‘살아 있는 무기’가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상사가 화를 낼 때 단순히 “저 사람 성격이 원래 저래”라고 넘기지 않고,
그 화의 근원을 탐색해보는 것이다.
그 안에는 두려움, 불안, 자기 부정, 혹은 가정의 문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근원에 닿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적’이 아니라 ‘이해 가능한 존재’로 바꿔낼 수 있다.
그때 철학은 칼이 아니라 다리가 된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고객이 왜 불만을 가지는지, 왜 다른 제품을 택했는지를 묻는 순간,
철학은 통찰이 되고, 통찰은 다음 성공의 씨앗이 된다.
철학은 매출 그래프 너머의 ‘사람의 마음’을 읽게 만든다.
결국 철학은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펜 끝에서 진리를 추적할 때는 무궁한 힘을 낳지만,
그 펜으로 돈을 벌기 위해 진리를 포장하기 시작하면
철학은 그 즉시 헛되어진다.
철학이 가장 숭고할 때는, 그것이 삶을 깊게 이해하게 만들 때이다.
철학이 가장 헛될 때는, 그것이 삶으로부터 도망칠 때이다.
철학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간다면,
내일이 안 보여도 모레가 안 보여도,
그 너머의 ‘미래’는 분명히 보일 것이다.
마치 예수가 말한 것처럼 —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다.”
스피노자 — “철학은 삶을 위한 실천이다”
니체 — “철학이 타락하는 순간은 생명력을 잃을 때다”
소크라테스 — “철학은 사유가 아니라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