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 사람에게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원래라면 무관심했을 나인데, 성찰이 부족한 건가 싶었다.
그 사람의 위선이 처음엔 그냥 쌓이는 정도였지만,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펜 끝이 칼 끝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였다면, 이렇게 분노했을까?
나는 스스로 묻는다.
이런 일에 분노하는 나는 나쁜 사람인가?
그냥 그가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놓아두는 것이 옳았을까?
아니면, 윤리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 진짜 ‘선함’일까?
언젠가 대안학교를 운영하던 한 목사가 교회에 와
“오토바이를 타는 쿨한 목사”라는 이미지를 어필했다.
아이들과 친해지는 법을 강연하러 왔다며
한 시간은 자기 자랑, 돈을 기도로 버는 법을 말하고
20분만 ‘친해지는 법’을 알려주곤 떠났다.
나는 생각했다.
“그가 살리는 아이가 많을까, 죽이는 아이가 많을까.”
그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삶의 태도가 이미 비뚤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때의 학생들이 욕 대신 ‘아멘’을 붙이며 말하던 모습이 겹쳤다.
물론, 내가 그가 오토바이를 탄다는 말에
꼭지가 돌아서 강의를 왜곡했을 가능성도 있다.
개인이 개인의 시간에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끄는 자리에서
잣대가 서지 않은 아이들 앞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노하는 것이 오히려 ‘진짜 선함’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이 분노가 악함인지,
그를 향한 정의감인지,
나는 오늘도 계속해서 묻고 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적절한 이유로, 적절한 대상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분노할 줄 아는 자가 진정한 덕의 사람”이라면,
나는 지금 그 ‘적절함’의 경계 위에 서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