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질문에서 또 다른 물음이 생겼다.
과연 올바른 분노란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수련목에게 분노하고 있다.
그에게 낼 수 있는 가장 옳은 형태의 분노는 무엇일까.
요 며칠 혼자서 그 생각을 붙잡고 있다.
주먹질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찾아가서 크게 화를 내야 할까?
아니면 따로 불러 조용히 말해야 할까.
이미 신학생 시절에도 주의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과연 말이 통할까.
있는 힘껏 뒷담을 하는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나는 그 친구에 대한 분노를,
정작 그 친구가 아닌 그의 선배에게만 표출했었다.
애초에 그런 문제는 직접 얘기하는 게 아니라,
윗사람에게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교회에 오랜만에 나온 형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을 대하는 건 서툴지만, 생각은 깊은 형이다.
그 형은 언제나 묻는다.
“왜?”, “그건 정말 옳은 걸까?”
그런 질문이 오갈 때마다 대화는 끝이 없다.
그래서 물었다.
“형, 올바른 분노라는 게 있을까?”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적절한 형태는, 결국 상대방이 정해주는 게 아닐까?”
그 말을 듣고 멈춰 섰다.
‘상대방이 정해주는 분노’라니.
그건 무슨 뜻일까.
상대가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
아니면 상대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
아마 그 사이 어딘가,
알아들을 만큼 강하고, 상처받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정도 아닐까.
지금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분노는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게 아니라,
전달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올바른 분노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선’에서
기분이 ‘최대한 덜 상하는 정도’로 표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 절제된 분노가 정말 ‘선하다’고,
나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