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다. 한 고등학생이 단체 카톡방에서 너무 무례하게 굴었다며, 한 분이 화를 참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 단톡방에 부모님도 계실 텐데, 집에서 혼나겠네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조부모님이 키우신대요.”
순간 마음이 아팠다.
조부모는 어쩌면 ‘부모의 부재가 우리 탓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그 아이를 끝내 다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부모의 빈자리를 감당하며, 그 결핍을 스스로의 잘못처럼 짊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이들이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왜일까. 아마도 어린 시절, 자신을 위해 눈물 흘리고 버텨온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하는 감사가 마음속에 자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쪽은 아버지의 부재를 반항으로 표출한 사람들, 다른 한쪽은 그 부재를 내면으로 삼킨 사람들이었다.
전자는 세상을 향해 거칠게 부딪쳤고, 후자는 자신 안으로 더 깊이 숨어들었다.
방향은 달랐지만, 둘 다 상처의 다른 형태였다.
결국 부모의 부재는 자녀의 정서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요즘 사회를 보면, 이혼이 너무 쉽게 이야기되는 것 같다.
“안 맞으면 헤어지면 되지.”
이 말 속에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이성이 숨어 있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이혼한 사람의 90%는 6개월 이내에 후회한다고 한다.
이혼이 당사자만의 문제라면 그나마 덜 심각하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자녀가 둘 이상인 어머니의 경우, 현실적으로 재혼의 길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책임은 아이의 몫으로 넘어가고, 그 상처는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TV에서 자주 보이는 ‘이혼 후에도 행복하게 사는 듯’ 한 프로그램이 불편하다.
그들이 잘 사는 건 좋지만, 그 장면들이 마치 **“이혼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해 마음이 씁쓸하다.
이혼한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이혼을 부추기는 사회는 분명 병들어 있다.
그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부조리함이 제도화된 결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