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공허함을 달래려 오랜만에 중국어 모임에 갔다. 그런데 착각해서 일본어 모임으로 들어가 버렸다.
운이 좋게도, 머리가 좋은 나는 영어·중국어·일본어·한국어, 네 개 언어를 할 줄 안다.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였다. 어쩌다 보니 2차 술자리에서도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공허함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이 조금 빠진 뒤 가장 비싼 술 한 병을 시켰다. 데킬라였다.
한 잔 마시자 내 안의 추악한 본성이 올라왔다. 상대방을 시험하는 독설, 본심이 아닌, 상대의 본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말이었다. 어쩌면 정화의 말.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공감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맞는 말이지 뭐.”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며칠 뒤 다시 밥을 먹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24살부터 31살까지 샌드위치 가게와 생과일주스 가게를 운영한 사업자였다.
가게를 살리기 위해 수없이 자신을 비워내고 성찰했던 사람.
대화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문제해결’이었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와 통찰, 원인과 결과.
그녀, 나, 그리고 내 가장 친한 IT개발자 친구 — 우리 셋은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했다.
문제가 생기면 감정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왜 기분이 상했어? 그게 상할 일인가?”
그런 대화를 반복하다 보면, 감정으로 반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하나씩 멀어졌다.
그래서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가 다른 걸까?’
결국 답은 문제해결 중심의 사고, 그리고 통찰이었다.
아마 이런 이유로 우리 셋 다 직장에 오래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본질을 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대부분 감정을 먼저 보는 사람들이다.
결국 우리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