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의 성경 다독에 대한 의문

by 삶 집착 번뇌

설교 중 “성경을 많이 읽으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왜 굳이 다독을 해야 하는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이유를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미 성경을 한 번 읽어본 적이 있다.

그 안에는 좋은 말, 나쁜 말,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연속적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성경을 마치 숨 쉬듯 읽으라고 할까.

기도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라는 뜻일까.

결국 두 가지 질문으로 모였다 — 성경을 ‘기도의 행위’로 읽는가,

아니면 ‘삶의 지침서’로 읽는가.


만약 성경을 기도의 한 형태로 읽으라는 의미라면,

굳이 성경이 아니어도 된다.

기도는 언어를 빌린 ‘사유의 집중’이니까.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반대로 성경을 따라 살라는 의미라면,

성경에는 분명 훌륭한 구절도 많지만,

윤리적으로 모순되고 납득하기 어려운 구절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혼란에 빠질 때

하나의 판단 잣대를 제시해주는 책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결론적으로,

필요할 때 필요한 구절을 찾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1회독 이상으로 읽을 필요는 없었다.

성경의 진리는 결국,

성경 바깥의 수많은 책과 사유 속에서도 도달할 수 있는 진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이 남는다.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고, 필요한 부분만 취하라는 말은

그 자체로 성경의 ‘성스러움’을 훼손하는 일은 아닐까?

그 순간부터 성경은 절대적 진리의 책이 아니라

‘참조 가능한 사유집’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어쩌면,

그때 비로소 성경은 ‘신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로 된 진리의 탐색서’로 다시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은,

신에 대한 의심이자, 신에게 던지는 도전장이 되는 건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문제해결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