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과 특별 사이의 경계에서

by 삶 집착 번뇌

가끔은 대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이 사무실에 놀러온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청첩장을 전하러, 혹은 그냥 옛날 기분이 그리워서.

한참을 수다 떨다 보면, 우리는 금세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때의 공기와 말투가 아직 우리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대학 시절, 내 선택을 ‘특이함’이 아닌 ‘특별함’으로 봐주던 친구가 있었다.

지금은 중견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언젠가 내 사무실에 와서 내 일상을 보고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스쳤다.


각자의 길에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친구의 삶을 흔들어버린 건 아닐까 해서.


돌아보면, 나는 꽤 일찍부터 도전을 삶의 전제로 삼아왔다.

그 덕에 많은 친구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여섯 명은 멀어졌고,

두 명은 무관심했고,

단 두 명만이 계속 내 곁에 남아 응원해줬다.

그게 그 시절 내 인간관계의 정확한 비율이었다.


어린 날부터 책을 친구 삼아 지내며

도전은 ‘해야만 하는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은 ‘피해야 할 위험’이었다.

그 차이가, 우리 삶의 방향을 갈랐다.


요즘 시대는 아이러니하다.

평균을 살기 위해서조차

수많은 도전이 요구된다.

대학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넘지 못하면

평균 연봉은 4천만 원.

죽어라 공부하고 경쟁해야

6천, 8천의 숫자에 가까워진다.


나는 몇 번의 큰 선택과

몇 번의 무모한 몰입으로

조금 일찍 그 문턱을 넘어섰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서

언제나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이 길이 무너져버리면

나는 어디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지금도 가끔 나를 멈춰 세운다.


도전은 결국,

지금 가진 모든 것을 도마 위에 올려두는 일이다.

잘려 나갈 각오 없이

그 위에 올라설 수는 없다.


친구들이 종종 묻는다.

“나도 사업해볼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지금 가진 걸 모두 내려놓을 수 있다면 해.

그게 아니라면 하지 마.”

업계에서 한때 잘나가던 사람들도

두 해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을

나는 많이 봐왔다.

50억이든, 100억이든

위에서는 아래가 훨씬 더 깊다.


평범한 행복도,

특별한 삶도,

모두 충분히 가치 있다.


다만 그 경계를 넘는 순간,

우리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는 단지

조금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일 뿐이고,

어떤 이에게는 안정이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꿈꾸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느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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