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오십의 신고식
"자기야, 이거 좀 이상해."
남편의 건강 관리를 위해 들여놓은 가정용 혈압기였다.
호기심에 무심코 팔을 찔러 넣었는데, 액정 위로 뜬 숫자가 낯설었다.
187 / 113
'기계가 고장 났나?'
다시 재보고, 남편 팔에도 감아보고, 게임에 열중하던 아들 팔까지 끌어다 확인했다.
야속하게도 기계는 너무나 멀쩡했다.
고장 난 것은 기계가 아니라 내 몸이었다.
참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고 몸이다.
숫자를 확인한 그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뒷목이 당기고,
머리에 압이 차오르는 듯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며칠간 혈압은 널을 뛰었고, 불안감은 풍선처럼 부풀었다.
결국 제 발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마주한 성적표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혈압은 여전히 167/110을 오갔고, 2차성 고혈압이 의심된다 했다.
이어진 검사 결과는 연타석 충격이었다.
빈혈 수치 8.5 (12~13이상이 정상)
당화혈색소 6.3 (당뇨 전단계)
경동맥 폐쇄 및 협착 (죽상 동맥 경화)
고혈압은 그저 결과였을 뿐, 원인은 내 몸 안에서 조용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의사는 당장 관리하지 않으면 당뇨약까지 먹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안과나 산부인과를 제외하곤 병원 문턱도 모르고 살았던,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던 나에게 날아온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뜻밖의 말을 건넸다.
"천운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발견한 게 다행입니다.
모르고 방치했으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을 뻔했어요."
천운!!!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큰 병이 오기 전, 몸이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충격을 동력 삼아 나는 삶을 리부트(Reboot)하기로 했다.
나의 소울메이트 떡볶이, 안녕.
내 혈관에 흐르던 달달한 바닐라 라떼, 안녕.
이제 내 친구는 러닝머신이다.
고작 10분 뛰었을 뿐인데 어지럽고 "힘들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당분과 카페인을 끊으니 세상이 조금 덜 아름다워 보이고 예민해지기도 한다.
불현듯 맵고 달고 짜게 먹던 지난날이 진정한 행복이었나 싶어 아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년이면 오십, 지천명(知天命)이다.
지난 반백 년을 내 마음대로 먹고 운동도 안 하며 살았으니,
남은 생은 몸을 달래가며 살아야 한다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운동도 안 하고 맘껏 즐겼던 지난날에 대한 청구서가 이제야 날아왔다고 생각하려 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187이라는 숫자를 보고서야 깨닫는다.
위기는 기회다.
나는 오늘부터 '관리하는 여자'로 다시 태어나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