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없다
사람은 무언가에 익숙해질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익숙함 때문에 소중함을 잊어버리곤 한다.
공기가 그렇고, 매일 아침 뜨는 해가 그렇다.
그리고 우리 곁의 '가족'이 그렇다.
특히 엄마의 '사랑'은 익숙함이라는 위장막을 쓰고 우리 삶의 곳곳에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아침이면 따뜻한 밥상이 차려져 있고,
학교를 다녀오면 깨끗하게 빨린 옷들이 서랍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풍경.
그것은 내게 일종의 자연법칙 같았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엄마는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당연히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 존재로 각인되었다.
그 '당연함'의 유효기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사회에 나와 1인 기업가로 분투하며, 마케팅 전략을 짜고
AI 툴을 공부하며 세상의 파도를 견디다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내가 밖에서 당당하게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어디서 오는지 말이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와도 변함없이 나를 맞아주는 익숙한 온기 덕분이었다.
엄마의 사랑은 계산기가 필요 없는 사랑이다.
내가 무언가를 성취해서 주는 상이 아니라,
그저 내가 나이기에 내어주는 무한한 지지다.
내가 시작하자마자 포기해도, 다시 시작해도,
혹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엄마만은 내 편이 되어준다.
그 '사랑'의 익숙함은 때로 나를 나태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바닥이 되어준다.
하지만 익숙함은 가끔은 잔인하다.
너무 익숙해서 엄마의 주름을 보지 못하게 하고,
엄마의 고단한 숨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엄마니까 당연히"라는 말 뒤에 숨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엄마의 희생을 모른 척하며 살아왔는가.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내가 당연하게 누려온 그 모든 일상이
사실은 엄마의 헌신과 눈물로 빚어진 기적이었다는 것을.
엄마가 나에게 준 것은 단순한 '보살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쪼개어 나에게 수혈해 준 '시간' 그 자체였다는 것을 말이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멈춰 서서 내 곁의 익숙한 것들을 응시해야 한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풍기는 익숙한 찌개 냄새,
전화를 걸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 익숙하고 다정한 눈빛.
익숙함은 사랑의 완성이다.
서로의 존재가 공기처럼 당연해졌다는 건,
그만큼 깊이 뿌리 내렸다는 뜻이다.
다만 그 당연함이 '무심함'이 되지 않도록,
오늘은 그 익숙한 사랑 앞에 마음을 다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누리는 이 익숙함은,
엄마가 나에게 주는 가장 거대한 사랑의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