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m의 폭설
2센티미터의 폭설: 기준은 상대적이다
오늘 아침, 대구에는 눈이 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눈이었다.
대구라는 도시는 참 묘하다.
여름의 지독한 무더위에는 이력이 났지만, 장마나 태풍, 그리고 겨울의 눈에는 유독 취약하다.
눈이 귀한 동네이다 보니
대구 사람들에게 눈은
낭만이기 이전에 '대처 불능'의 재난에 가깝다.
오늘 내린 눈은 고작 2센티미터 남짓이었을까.
다른 지역 사람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 '애교' 수준의 강설량이었지만, 대구는 아침부터 아비규환이었다.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고, 곳곳에서 접촉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아침 일찍부터 지인들과 "운전 조심해라", "차 두고 가라", "길이 미끄럽다"며 안부 전화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 역시 눈길 운전 경험이 전무한지라 일찌감치 차를 포기하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평소 40분이면 충분했을 출근길이 1시간 30분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간신히 도착한 일터,
평소라면 만차였을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는 풍경을 보며 실소했다.
대구 사람들에게 오늘 아침 2센티미터의 눈은
명백한 '폭설'이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건 '기준'의 차이다.
전라도에서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 대구에 폭설이 내렸다며 사진을 한 장 보냈더니, 답장이 가관이었다.
"엄마, 이건 눈이 온 것도 아니야."
매일 아침 눈을 치우느라 고생하는 아들의 기준에서 대구의 눈은 그저 먼지 같은 존재였을 터.
우리는 흔히 내가 가진 자를 세상의 유일한 척도라고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오늘 대구의 아침이 보여주듯,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작은 변화도 거대한 파도로 다가오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폭풍우도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이다.
비즈니스나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누군가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수 있고, 내가 "죽을 만큼 힘들다"고 느끼는 고통이 누군가의 눈에는 엄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쌓아온 데이터와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 대구의 2센티미터 눈은 나에게 '대중교통 이용'과 '느림의 미학'을 강요했지만, 동시에 중요한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타인의 고군분투를 나의 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하지 말 것.
지금 내리고 있는 그 미미한 눈이 생존을 위협하는 폭설일 수도 있으니까.
주차장을 텅 비게 만든 대구 사람들의 조심성이 누군가에겐 과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이곳의 생존 방식이자 기준이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은 '눈의 무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 거북이걸음을 하는 버스 안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