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언어로 소통하다

불청객처럼 찾아온 사춘기

by 가비야

사춘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 같았다.

품 안의 자식이라더니 어느덧 내 키를 훌쩍 넘긴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 대신 무심하고 시크한 눈빛을 장착했다.

그 낯선 거리감 앞에서 나는 서운해하기보다 아들의 언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먼저 아들이 열광하는 귀멸의 칼날과 주술회전을 함께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생소한 세계관과 빠른 전개가 어색했지만 화면 속 캐릭터의 이름을 외우고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아들과 대화할 수 있는 코드가 생겼다.

아이가 즐겨 듣는 노래를 함께 듣고 노래방에 가서 생경한 멜로디에 박자를 맞추기도 했다. 인형뽑기 방에서 작은 인형 하나를 뽑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집중하던 시간들은 그 자체로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이런 노력들이 빛을 발한 덕분일까.

아들의 사춘기는 감사하게도 큰 풍파 없이 무난하게 지나갔다. 예전처럼 살갑게 품에 안기지는 않지만 덤덤하게 제 할 일을 하며 성장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물론 가끔은 예전의 그 귀염둥이로 돌아와 줬으면 하는 욕심이 불쑥 솟구치기도 한다. 덥석 안아보고 싶고 더 가까이 곁에 두고 싶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내 방식대로 아이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방식대로 서 있는 그곳까지 내가 걸어가는 것임을 말이다.


​엄마의 욕심은 조금씩 내려놓고 아들이 만든 세상의 문법을 존중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시크해진 말투 속에 숨겨진 따뜻함을 읽어내고 아이의 언어로 말을 걸며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깊이 알아간다.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때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사랑스럽다.


소통은 결국 상대가 사용하는 단어를 익히고 기꺼이 그 세계로 들어가는 용기라는 것을 사춘기 아들을 통해 다시 배운다. 아이의 성장이 아쉬워 품에 가두기보다 한 발짝 뒤에서 아이의 언어로 응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오늘도 나는 아들이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으며 아들의 세계에 조심스레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