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가물가물해도 참 좋았다는 느낌은 뚜렷하다. 우연이 가져다준 의외의 기쁨으로 충만했던 날. 볼일 있어 서울에 올라온 친구수녀한테 연락이 왔다. 걸으면서 대화하기 좋은 코스여서 '도심 속 천년 고찰' 봉은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마침 법왕루에서 음악회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앞쪽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고 법당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신도님들이 수녀님 오셨다고 자리를 내주었는데 덩달아 나까지 귀빈대접을 받았다. 오랜만에 만나 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양성원의 첼로와 엘니트 파체 피아니스트의 듀오곡이 흐르는 동안 이심전심, 우리 둘은 통하고 있었다.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그날의 첼로 연주자 양성원을 안 것은 다큐 <시간의 종말>을 통해서였다. 그건 병인박해 150주년을 맞아 이 땅에서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 대한 오마주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요한묵시록을 바탕으로 작곡한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말고도 다큐 전반에 흐르는 그의 연주에 반해빠져들었다.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의 울림을 느끼다 보면 일상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우리를 다시 꿈꾸게 하는 힘."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날,봉은사에서 양성원 첼리스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금방 반하고 오래 잊고 있었던 첼로 연주하는 철학자를.
불자佛者 친구 따라 절에 가다.
선배가 다닌 절, 그 덕에 봉은사에 자주 갔다. 사찰 안내봉사를 하는 선배한테 배우고 익혀 그곳이 익숙해졌다. 도심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찜해놓은 봉은사 말고도 불자인 친구 따라 다른 절에도 가고 법문도 듣는다. 천주교인인 내가 이러는 걸 두고 종교다원주의자, 크리스천 부디스트 등등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 그러든가 말든가 가슴을 파고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반야심경은 예리하고 정확해서 뜨끔하다. 260자, 긴 말이 필요 없다.
몹시 괴로워 견디기 힘들 때 반야심경을 만났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보였다. 반야심경의 핵심은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다시 말해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넌다는 뜻이다. 아는 대로 풀어보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보는 순간 좋거나 싫거나 그저 그렇다고 판단, 분별하기 때문에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자기가 판단, 인식, 분별로 알게 된 것이 진짜라고 믿고 움켜쥐거나 거기에 사로잡히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 현실, 진실을 직시하라. 분별망상을 내려놓으라. 그게 핵심이다.
진리는 간단명료한데, 삶은 쉽지 않은 게 늘 문제다. 진리는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고 덜하거나 더하거나 할 뿐이다, 여전히.
엽서그림 By momdal
생각을 믿지 않으면 괴로움도 없다.
생각은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있어서 생각을 믿으면 불안하고 괴로워진다. 가만히 있다가도 어떤 한 생각이 떠올라 불안하거나 괴롭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문득, 사로잡혔던 생각을 탁 놓으면 갇혀있던 생각에서 해방되는 경험도 했을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내가 아니고, 생각도 내가 아니고, 행동조차 내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냥 인연 따라왔다가 사라진다는 것.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다는 것. 고정불변하지 않고 늘 변한다는 것.
엊그제만 해도 물러갈 것 같지 않던 한낮의 더위가 가고(往) 선선한 공기가 온 것처럼(來) 세상 모든 것은 왕래한다. 오고 가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도 붙잡을 수 없다. 선택하더라도 붙들어 맬 수 없고 인연이 다하면 왔던 것도 갈 것이고 때가 되면 갔다가도 되돌아온다는 이치를 알면 된다. '그렇구나' 하고 알아채는 것만도 큰 이득이다.
마음공부를 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실은 바꿀 수 없다, 안타깝게도. 현실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이 마음공부,바꿀 수 없는 것에 힘을 빼지 않는 게 핵심이다.
막막한 현실, 희망 없는상대도 사랑하기 위해서. 나와 다른 세상에 접속하고 있는 상대의 회복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단 하나, 그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의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일이다. 한마음 한 몸으로 이어진 무의식의 바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