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는 것 없는 넓은 하늘과 마주 보고 솟은 관악산과 청계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정원의 나무와 꽃과 나비를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정원이 메인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내겐 하늘, 산, 바람, 햇살이 먼저다.
입구에서 달큼한 냄새가 난다. 이 냄새.... 계수나무가 사는구나. 맞다, 하트모양의 잎을 가진 [푸른 하늘 은하수]의 계수나무!
정원 한가운데, 나무 기둥을 연상시키는 원통의 건물을 타고 넝쿨식물들이 귀여운 열매를 매달고 있고.
푹신한 의자에 아침이슬이 맺혀있다. 해가 먼저 든 의자에는 물기가 없어 배낭을 맡기고 가을로 가득 찬 원형정원을 한 바퀴 돈다.
이름은 몰라도 이쁜 것은 인정.
으아리도 아니고 멸종위기 큰 바늘꽃도 아닌 것 같은데... 이름은 모르겠고 이쁘긴 무지 이쁘다.
오전 11:00 정원에서 쉼.
햇살에 눈이 부시다. 요 며칠 한낮엔 여름 같다. 점점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 겉옷을 벗어 허리에 동여맨 지 오래다.
2층 올라가는 길.
올라가면 관악산과 청계산, 그리고 호수와 서울랜드, 미술관 야외조각공원까지 가까이 다가온다.
바람에 날려버리고 깃털처럼 가볍게.
답답하고 뭉쳐있던 것들이 풀어져 바람결에 흩어지는 곳이다. 걸으면 가벼워지고 단순해지고 여기 푹신한 의자에 앉으니 아침햇살이 온몸을 감싸준다, 포근하게.
막힘없는 스카이뷰, 마운틴 뷰, 파크뷰, 온갖 뷰의 총집합이다.
미술관 밖으로 나와 다음 들를 곳을 내려다본다. 미술관이 닫혀있을 때는 저기서 바라보고 저기서 쉬면 되는데, 해 질 녘 얼마나 아름답고 운치 있는지 모른다.
아, 관악산.
결혼해서 여태 관악산을 바라보고 관악산을 등진채 그 언저리에서 살아왔다. '岳' '嶽'이 들어간 산은 험한 산이라고 해서 '악'소리 나지 않게 살아보려고 했건만 순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 들어갈수록 누구나 다 '악' 소리를 내며 살고 왔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엄살과 하소연이 줄어드는 중이다. 누구나 자기 몫의 '악'을 감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니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위대한 것 같다.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모습도 참 예쁘다.
미술관 야외조각공원.
혼자 와서 머물다 가곤 했던 곳이다. 낡은 중고차를 끌고 벚나무 길을 거쳐 미술관까지 왔던 그 옛날, 바람 쐬고 가면 '이상하게' 힘이 생겼다. 몸을 움직여야 마음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움직이는 것 같다. 마음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환기'되는 것은 차이가 크다. 몸을 움직인 것뿐인데 탁한 마음이 맑아지는 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
조각작품보다 여기서도 파란 하늘과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한들거리는 풀, 물들어가는 나뭇잎과 가을꽃에 눈이 간다. 사람의 작품이 아닌 신의 작품에 마음이 간다.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달뿌리는 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대하고 비슷한 풀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름을 이렇게 곱게 짓는 것인지, 그런 이름을 따온 작품이 돋보인다. 여기가 바로 정원디자이너이자 환경미술가 황지혜의 작품. 월요일 휴관 빼고 날마다 10시부터 6시까지 가볼 수 있는 곳이다. 해 떨어지고 조명이 들어올 때 와도 좋은 곳이다.
안으로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인데, 미술관 안의 작품보다 자연이 빚어내는 작품이 아름다워 안으로 들어와 볼 생각을 못했었다. 아침산책 마치고 쉬러 들어온 건데 때를 잘 맞춰 잘 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