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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Feb 24. 2017

맥도날드 말고 잘츠부르크

여행자를 위한 음식



애플파이 성지, 맥도날드 말고 잘츠부르크

여행자를 위한 음식



잘츠부르크는 별로 큰 도시가 아니다, 는 것도 겸손한 표현인 것 같다. 작은 도시다, 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어지간한 곳은 최대 사십 분 내에 갈 수 있는 ㅡ 어쩌면 도시 한 바퀴를 사십 분 내에 돌 수 있는 곳이다. 거주인으로써 가야 할 곳이든, 여행자로써 가보고 싶은 곳이든 필요와 욕구를 충족할 만한 어지간한 곳은 잘츠의 중심지(나는 내 마음대로 강을 중심지로 생각한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 지리를 파악한 타지인의 습성 때문인지도 모른다)로부터 심지어 걸어서 사십 분 안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그 아기자기하고 조용하고 청량하고 어느 정도 촌스럽기까지 한ㅡ 비엔나에 비하면 시크함과 고급스러움은 없고, 편안함과 신선함이 느껴진다ㅡ "마을"의 느낌이 잘츠의 진성 매력이다(라고 역시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잘츠를 보스턴에 비교해 본 적도 있는데 (젊은데 보수적인데 시골 같은데 묘한 오픈 마인드인데 깨끗하다), 가장 큰 유사점은 소박하고 맛깔난 시그니처 푸드가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스턴의 도넛처럼 잘츠부르크에는 따뜻하고 보드라우며 파슬파슬한 설탕 가루가 뿌려진 애플파이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애플파이는 아니고 으깬 사과절임을 크레페로 둘러싼 후 슈가파우더를 뿌린 애플크레페 또는 애플롤에 가깝지만, 잘츠부르크 카페 주인들은 관광객에게 메뉴를 쉽게 설명해주기 위해 이건 애플 파이랑 비슷해요, 라고 말한다. 그리고 따끈한 커피와 함께 이 슈가파우더 애플파이를 내어준다.


잘츠부르크에 갔을 땐,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힘들었다. 힘든 일이 있어서 피치 못해 갔거나 아니면 가서 힘든 일을 마주하고 왔다. 잘츠부르크를 걸어서 다 구경할 수 있구나, 라고 느낀 것도 그 힘든 일 때문(덕분)이었다. 걸을 시간이 있었고 걸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다리를 건너고 강가를 왔다갔다하면서 개들과 비둘기들과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필요가 있었다. 잘츠부르크 강 주변의 샌드위치 집마다 들어가 끼니를 떼우거나 간식을 먹었다. 미라벨 궁에도 몇 번이나 갔고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매일 왔다갔다했다. 쌀쌀한 감이 있는 공기를 쐬고 나면 머릿속이 깨끗해졌고 그러면 애플 파이를 먹으러 갔다.



잘츠는 조용하고 여유롭고 학생들도 많은 곳이다. 공연예술이 발달해 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고, 모차르트 생가는 늘 북적북적하며 어느 슈퍼마켓에서든 모차르트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매일 이가 썩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또 바쁘게 지내는 젊은이들은 별로 없는 듯, 카페에 들어가면 한땀 한땀의 햇빛을 빨아당기듯 담요를 덮고 소파에 드러누워서 커피를 마신다. 애플파이를 먹는다.


서로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 카메라를 함께 보고 있는 친구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옆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 나란히 자전거를 끌고 카페 앞에 멈춰서는 모습이 유독 서러운 날이 많았다. 그래도 혼자 꿋꿋하게 카페에 들어가 애플파이를 시켜 먹었다. 금세 눅눅해지는 파이를 먹고 나면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다시 강가를 걷거나 앉아 있을 힘이 생겼다. 해가 질 때까지 나는 밖에 있었고 마치 잘츠 사람처럼 햇빛을 빨아당겼다. 맥도날드에서 먹었던 수많은 애플파이에게 콧방귀를 뀌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그런 날이 있었다. 그때는 힘들었는데,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날이 고스란히 그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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