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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Feb 25. 2017

카츠동의 위대한 미덕

여행자를 위한 음식



그래도 카츠동은 먹어야 한다

여행자를 위한 음식



일본만큼 도시 크기를 불문하고ㅡ 그리 많은 도시에 가 본 것은 아니지만 동경 주변과 오사카 주변, 후쿠오카 등지 등 어지간한 규모의 도시 몇 개만 따져보면 빈도만큼은 상당히 잦았다ㅡ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은 곳은 만나지 못했다. 가이세키 정식을 파는 유서 깊은 식당도 있고, <심야식당> 마스터 같은 사람이 계란말이를 척척 만들어내는 술집도 있다. 역 앞이 아니라도 라멘집과 우동집, 메밀국수집은 엎어지면 코닿게 많다. 스파게티 가게마저 정말 헉 소리 날 정도로 많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면 요리를 유독 좋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섣부른 성급화의 오류" 같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모든 가게마다 특색이 있고 자랑거리로 삼는 메뉴도 남다른 듯, 미식가의 풍모가 있는 곳이다ㅡ 영화 <허니와 클로버>를 봤을 땐 내가 다니는 대학 앞에 저런 오므라이스를 파는 가게가 있다면 매일 갔을 텐데, 라고 진지하게 부러워했다.



그러나 일본에 가면 오므라이스 하이라이스 카레라이스 간장라멘과 미소라멘 튀김소바와 지라시스시를 뒤로 하고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돈까스를 ㅡ 그리고 돈까스덮밥을 먹어야 한다. 돈까스덮밥(만)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 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가, 그래도 그 정도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영화 <허니와 클로버>에서 아오이 유우가 오물오물 예쁘게 먹었던 음식이 돈까스다. <오센>에서 유서 깊은 음식점의 오카미(여주인) 역을 맡았던 아오이 유우인데 꼭 그 돈까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라멘 기행이나 우동 기행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지독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도 라멘, 우동, 소바, 오니기리를 제쳐두고 돈까스가 떠오른다


<고베식당> 영화가 정말 나올 것이라 기대한 만큼 일본 카레에 대한 애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형카레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돈까스가 떠오른다.




손쉽게 만들 수 있지만 의외로 공수가 들어가는 부분이 많은 돈까스 또는 돈카츠는, 어느 식당의 것인들 하나같이 따뜻하고 풍성하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족한 기분이다. 이걸 언제 다 먹지 하고 시작하지만, 언제나 채썬 양배추까지 싹싹 긁어먹는 걸로 끝이 난다. 꽉 찬 배를 라이언처럼 두드린다. 작은 식당이든 큰 식당이든, 돈카츠 하나든 달걀을 얹은 덮밥이든, 국물 자작한 나베이거나 바삭한 카츠이거나 상관없이 이 풍성함은 돈카츠가 가지는 거대한 미덕이다.



내가 튀긴 새까만 돈까스든 남산 왕돈까스집 돈까스든 세상에 풍성함이 없는 돈까스는 없다. 꼭 아 우리 엄마가 튀겨줬던 돈까스, 에 대한 추억이 없어도 좋다ㅡ 우리집은 돈까스를 튀겨주느니 돈까스를 시켜주는 집이었다. 돈까스의 풍성함은 그 자체로 내재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 그리고 외국의 골목을 돌아다닐 때만큼 그런 무조건적인 풍성함이 필요한 순간도 드물다.



한적함과 북적거림, 조용함과 시끄러움,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가깝고도 먼 도시에서 복잡한 전철을 타고, 골목을 걷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보면 배가 몹시 고파진다. 어디에나 있는 메뉴인데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르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라는 생각과 배가 고프니 뭔들, 이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구마모토곰 뺨치는 인자함이다. 대인배의 풍모를 뿜는 음식이 있다면 단연 돈카츠일 거라고, 덮밥도 되고 국물은식도 되는 이 든든한 튀김요리일 거라고 생각한다. 한밤중이라도 개의치 않고 달걀과 양배추가 곁들여진 돈카츠를 먹고 싶다. 심야식당이 아니라도 좋으니 오물오물 느긋하게 돈카츠를 먹고 싶다.


문득 생각났는데, 일본어가 지금보다 훨씬 서툴 때 (아무래도 나는 한자와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 커널 시티 안을 헤매고 돌아다니다 친절한 아가씨 두 사람을 만나 찾아간 곳도 카츠동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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