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즐 Apr 12. 2019

오래된 미래, 메리 포핀스 리턴즈

잊고 있었던 것들을 가지고 돌아온 그녀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줄리 앤드루스의 시그니처 캐릭터와도 같은 '메리 포핀스'(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슈퍼칼리-프래절리스틱-엑스피알리-도우셔스!)를 <시카리오>와 <엣지 오브 투머로우> 영화를 장악했던 배우 에밀리 블런트가 맡는다는 것, 토니샹 11개를 휩쓴 <해밀턴>의 주인공인 린 마누엘 미란다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 등등으로 크랭크인 때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예상했던 것만큼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지는 못한 듯 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기억에 남는 멜로디나 라인송이 없다",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하다" 등등의 평들 중 눈에 많이 띄었던 것은 단연 "줄리 앤드루스 시절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변명 아닌 해명을 하자면,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예전 <메리 포핀스>의 리메이크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줄리 앤드루스의 <메리 포핀스>도 원작 소설에 기반해 만들어진 개작물(Adaptation)이었다). 바람을 타고 왔다가 또 바람을 타고 사라졌던 메리 포핀스가 다시 돌아오는, 그리하여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다. 즉 메리 포핀스의 첫 방문과 이별 이후 그 미래, 메리 포핀스와의 재회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과거의 메리 포핀스에 대해 돌아온 메리 포핀스는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추억의 노래(다시 한번 슈퍼칼리-프래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를 듣고 싶었던 관객, 줄리 앤드루스의 사랑스러운 메리 포핀스를 다시 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메리 포핀스 리턴즈>에 어리둥절 빙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 내가 알던 메리 포핀스가 아니잖아, 라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많고많은 노래 중에 슈퍼칼리 노래는 꼭 듣고 싶었지만, 사실 에밀리 블런트의 메리 포핀스는 원작자의 메리 포핀스와 한결 비슷하다. 메리 포핀스는 허영심이 있고 까칠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누가 상관하겠어?" 같은 말투로 일관하는 사람이고, 에밀리 블런트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처럼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속을 알 수 없는 메리 포핀스를 살려낸다. 제멋대로 사라졌다가 또다시 이 집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해질 때가 된 것 같군, 하고 제멋대로 찾아오는 것이다.



성인이 된 마이클과 제인 남매. 마이클은 부인과 사별했고 재정적인 곤란에 처한 상태이기도 하다. 마이클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고, 세 조카들의 고모가 된 제인은 어떻게든 난국을 타개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뱅크스 집안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돌아온" 메리 포핀스는 다시 한번 아이들을 위해서 새로운 이미지와 노래를 만들어낸다. 예전과는 영화적 작법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노래와 이미지가 삽입되는 방식도 다르다. 반복적인 멜로디로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을 찍는 1990년대 디즈니 또는 미국 뮤지컬의 동향보다는, 가사로 이야기를 풀어내거나 또는 반대로 이미지에만 집중하는프랑스 뮤지컬 및 최근의 디즈니 영화에 가까운 느낌이기도 하다(물론 순전히 내 느낌이다).  색감은 여전히 예쁘지만 오히려 예전 영화에 비해 물빠진 수채화 같은 느낌이다. 쨍한 칼라감으로 당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을 메리 포핀스와는 확실히 여러 면에서 다르다.그럼 리메이크가 아닌 새로운 메리 포핀스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 중독성이 강하고 다소 시시하게 느껴지는 노래를 들고, 라고 물어온다면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렇기 떄문에, 메리 포핀스여야만 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메리 포핀스는 예전에도 지금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떄의 메리 포핀스와 지금의 메리 포핀스 모두 아이들의 헛된 상상력과 쓸모 없는 생각들을 사랑한다. 아이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사랑하고 아이가 받아야 할 마땅한 애정과 관심을 사랑한다. 가족이라는 구성체, 공동체, 집단, 어떤 것이든 아이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구조를 요구한다. 지금에는 다소 경시되고 무시되며 때때로 멸시되기까지 하는 가치인 안정성, 가족, 결속력, 애정과 아이다운 상상력을 다시 제자리에 세운다.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이고, 구태의연하다면 또 구태의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게다가 메리 포핀스의 가족은 반드시 엄마와 아빠와 딸과 아들로 구성될 필요가 없다. 메리 포핀스는 가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지 가족의 형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메리 포핀스는, 지금과는 다른 "오래된 미래"를 가져다준다.



물론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탄탄한 영화가 아니다. 그냥 물 흐르듯 얼래설래 흘러가는 영화에 가깝고, 극적 긴장감도 부족하다. 그러나 누가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영화고, 또 한번쯤 볼 만한 영화인 것은 확실하다. 영화라는 것 자체가 꿈의 결과물이라고 누가 그랬던으니(꿈의 공장, 보다는 꿈의 결과물, 이 조금 더 무난하지 않은가) 이런 보송보송한 파스텔화의 꿈에 빠져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메리 포핀스가 돌아와주어 기쁘고, 언제든 또 돌아온다면 좋겠다. 예전 호첸플로츠처럼 돌아오고 돌아오고 또 돌아온달까, 불멸의 존재로.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아이러니, 머니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