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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Apr 10. 2019

인생은 아이러니, 머니볼

경쟁에 대응하는 경쟁, 잔인함에 대응하는 냉정함


브래드 피트와 조나 힐,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꼭 이름을 쓰고 싶었다) 주연의 <머니볼>은 이를테면, 언제든 케이블 채널에서 틀어주어도 도저히 텔레비전을 끄거나 중단하기 힘든 영화다. 분명히 결말을 알고 있는데, 심지어 브래드 피트의 표정이나 대사도 알고 있는데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좋아하는 야구 영화들이 몇 개 있지만 그중 가장 좋아하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야구 영화라고 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나이 많은 스카우터로, 딸 에이미 아담스와 함게 화해여정에 나선다). 진짜 야구 영화, 야구에 대한 얘기와 야구 경기 그 이면의 이야기를 하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스타일의 영화로는 <머니볼>을 꼽아야 할 것 같다. 메이저리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너무 무겁지 않게, 재미있게, 그러나 또 그냥 넘길 수 없는 진중함과 신랄함으로 보여준다. 무척 상업적이고 접근이 용이하지만, 특히 야구 팬들에게는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영화다.



브래드 피트는 한때 야구 선수였지만 스카우터로 전향한, 현재는 오클랜드 팀의 단장을 맡고 있는 주인공을 연기한다. 야구선수로서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고는 스카우터로 돌아섰고, 지금은 단장을 하고 있으니 나름 백 퍼센트 만족하지는 못해도 팔십 퍼센트 이상은 만족스러울 법한 커리어를 쌓았다고도 할 수 있다 -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와 미술, 음악 등 예체능계의 커리어는 참 닮았다. 냉정하고 잔혹한 세계다. 어린 아이들이 발을 담그기엔 너무 차갑고 아찔한 세계인데도, 어린아이가 아니면 애초에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순수한 열정의 세계이지만, 지저분한 로비의 세계이기도 하다. 백이십의 재능이 있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구십구나 구십팔의 재능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끝내 절망해야 한다. 하물며 구십오, 구십, 팔십오, 팔십들은 야수에게 잡아먹히듯 도태의 위기를 수시로 맞이한다. 조금이라도 발을 삐끗하면 다시 들어올 수 없는 엄정한 곳, 다분히 운과 재수와 말 한 마디가 인생을 좌우하는 곳에 대해 나도, 나의 아빠도 잘 알고 있다. 나의 아빠만 해도 태권도 선수였다가 볼링 상비군이었다가 체육 선생님이었다가 회사원이 되었다. 나는 내가 떨어져나온 리그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이상한 방법으로 애쓰고 있다. 제리는 선수들이 잘 뛰어도 마음이 불편하고 선수들이 못 뛰면 죽을 지경일 것이다. 그것이 한때 선수였고 스카우터였던 단장의 숙명이다.



전력이 약한 오클랜드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가난한 팀은 좋은 선수를 사올 수 없으니 계속 약체로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스카우터들의 "감"을 믿고 베팅을 걸어야 하는가. 후자가 야구계의 관습법이지만, 브래드 피트는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야구계로 들어온 특이한 이력의 조나 힐이 제시하는 접근법에 동의하게 된다. 스카우터들이 반대해도 그의 눈에는 이 새로운 "머니볼"의 접근법이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보인다. 돈이 없다면 몸값이 낮은 선수를 사야 한다. 몸값이 낮은 선수들 중에서도 실력이 좋은 선수를 사야 한다. 실력이 좋은 선수를 골라내는 방법은 스카우터의 감에 의존하는 피상적 확률론이 아니라 선수의 이전 전력에 의존하는 실체적 확률론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투구 폼이 웃겨서, 생김새가 못생겨서 등등의 이유로 그들의 진짜 "숫자"에 비해 낮은 몸값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찾아낸다. "대체 왜 이들을 돈 주고 사오는 거야?"라는 지탄을 듣더라도, 심지어 그의 직업이 위태로워질지라도, 브래드 피트는 이 철두철미한 숫자게임을 믿기로 한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올라갈 팀은 올라가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잠언(..)이 있다. 신기하게도 정말이다. 연초에 1위로 달리던 팀이 8위 내지 9위로 떨어지고, 연초에는 팀타율 1할을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던 팀이 결국 포스트시즌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이 문장만 보면 언뜻 이변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변이란 것은 없다. 결과론적으로든 어떻게든, 선수들이 갖고 있는 숫자와 결과는 대부분, 맞아떨어진다. 고교 시절부터 시시했던 신인이 치고 올라오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만(바로 여기서 구십, 구십오, 백, 백이십의 재능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같이 고교 시절 난다긴다 하던 사람들이 프로로 들어와서는 이 재능의 차이에 왕왕 절망하기 때문이다), 다른 주역의 그림자에 묻혀 있던 2군들이 빛나게 되는 경우는 많다. 그들은 이미 숫자를 가지고 있고, 좋은 감독/단장/스카우터는 이런 숫자를 발굴해낸다. 이상적이다. 그리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이상성"이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성 또는 아이디얼리즘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순수히 스포츠계에서 통용되는 이상성과 합리성이라는 점이 <머니볼>의 묘미 아닌 묘미, 쌉싸름한 맛을 만든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직감과 선호와 애정(과 어쩌면 돈)이 좌우하지 않을 뿐이지, 프로의 잔인함과 냉정함과 냉혹함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브래드 피트는, 편견이 좌우하는 냉정함에 숫자가 좌우하는 냉정함으로 대응할 뿐이다. 그는 리그와 팀에게 좋은 단장이지만, 동화속에 어울리는 "좋은" 단장은 아니다.



난 선수들과 같이 여행하지 않아, 라고 브래드 피트는 말한다. 조나 힐에게 이것도 일의 일부라면서 선수들을 해고하는 일, 트레이드를 통보하는 일을 시킨다. 쉴 새 없이 다른 팀의 단장이나 스카우터들과 통화를 하면서 자기 팀 선수를 팔아치우고 그쪽 선수를 사 오는 단장의 모습은 무인격의 증권을 사고 파는 증권거래소 직원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선수들이 새 팀을 위해 이사를 마쳤든, 아이들의 전학 수속까지 마쳤든, 배려하고 동정할 수 없다. 너무 어려워요,  저는 이런 일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라고 망설이는 조나 힐에게 브래드 피트는 단언한다. 그들은 프로야, 그러니까 그냥 짧게 끝내. 그렇다, 선수들은 프로들이다. 프로란 어떤 일에 대한 돈(대가, 금전적 보상)을 받고 그 특정한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선수들은 야구를 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야구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 좋지 않은 숫자를 보여주는 선수는 보내야 하고 좋은 숫자를 보여주는 선수를 데려와야 한다. 덕분에 오클랜드는 기적을 써내려간다. 단장의 머니볼은 결과적으로, 성공한다. 그러나 어쩐지 관객들은 마냥 기쁘지가 않다. 관객들은 제리가 언제까지고 락커룸에서 고뇌할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경쟁해야 한다. 냉정하고 잔인해야 한다.



어쩌면 가장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와 분노와 슬픔과 다른 온갖 감정들이 지배하는 것 같은 세상. 그러나 이런 세상이 오히려 가장 냉정하고 지엄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제리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기적을 일으킨 마법사가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끌어낸 수학자이다. <머니볼>은 바로 이런 아이러니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다. 게다가 이 아이러니는 단지 인생의 어느 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우리 인생 자체가 바로 아이러니다. 가끔은 부당하게, 부조리하게, 지나치게 느껴지는 것들 때문에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웃고 우는가? 단지 야구지만 그래도 야구라고 또 누가 그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누가 그랬다. 여기서 이 야구, 라는 것을 인생, 이라고 바꾸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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