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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Apr 15. 2019

컬트라는 쾌감, <헬보이>

B급과 C급 어딘가를 유랑하는 감각

기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와 <헬보이:골든아미>는 그 미장센의 독특함에서는 따라올 바 없는 영화였다.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기괴한 상상력의 산물들이 장면과 장면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나 기예르모 델 토로는, 굳이 억지로라도 분류하자면, "감성" 판타지 및 호러를 사랑하는 감독이어서 이야기는 다소 늘어졌고 지루한 감도 있었다. 솔직히 지금은 그때의 <헬보이>와 <골든아미> 줄거리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다른 몇몇 영화들처럼 재평가가 필요한 수작(잘못된 마케팅의 일례로 늘 꼽히는 <판의 미로>라든지, 아직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던 시절의 <악마의 등뼈>처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독특한 영화 중 하나로는 기억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도 내 맘에는 쏙 들었던 <크림슨 피크>와  <퍼시픽 림>만큼 땡기지는 않는 영화다.



<헬보이>가 닐 마샬 감독에 의해 리부트되면서, 원작 코믹스의 분위기에 한결 근접한 영화가 될 거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과연 기예르모 델 토로의 전작들과는 어떤 차이가 날 것이며 또 원작 코믹스의 팬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론과 회의론이 있었다. 지금 여러 영화 포털, 로튼토마토와 아이엠디비 등을 참고하자면, 닐 마샬의 <헬보이>에 대해서 신기하게도 개봉 전이든 후이든 마찬가지로, 꽤 비슷한 비율로, 기대와 회의 또는 호평과 혹평이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기대했던 사람이 호평하거나 반대로 실망했을 수도 있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형편없다고 혀를 차거나 아니면 오히려 만족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영화가 좋다, 혹은 나쁘다, 하나로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의 오묘한 비율로 두 의견이 혼종되어 있는 상태인 건 틀림없다. 어쩌면 이번 <헬보이> 자체가 어느 면이 좋고 어느 면이 나쁜지 쉽게 평가하기 어려운 영화여서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묘하다. 웃기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징그러울 필요가 있었나, 라는 의견과 오랜만에 슬래셔 무비를 즐겼다, 라는 의견이 있다. 얼개가 없다는 의견과 필요한 이야기만 뽑아치고 나갔다, 라는 의견이 있다. 괜히 어쭙잖은 유머코드를 섞어 영화에 힘이 빠졌다, 는 의견과 애기처럼 징징거리는 헬보이의 개그 덕분에 완급조절이 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코믹스 히어로들과는 출신 성분(!)에서든 외모에서든 차이를 보이는 주인공이다 보니 영화도 관객도 모두 혼란의 도가니에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어쨌든 이번 <헬보이>는 그런 혼란스러움이 마냥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이상한 매력을 가진 영화다. 굳이 비교하자면 <엘 토포>를 보는 기분이 든다. 알레한드로 조도르프스키의 영화가 재미있었던 적은 없는데, 나는 <엘 토포>도 보고 <홀리 마운틴>도 봤다. <듄>도 봤다. 몽땅 재미없었는데 은근히 끌렸다. 도대체 감독은 무슨 뜻으로 이런 영화를 만든 걸까, 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이미지라든지 대사가 머리에 남았다. 조도로프스키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파졸리니의 영화도 그런 극단적인 기괴함의 맛이 있었고 그래서 도저히 피할 바 없이 보게 되는 영화가 되었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런 영화들을 대개 "컬트"라고 부른다. 그리고 B급 같은 A 내지 A++급(사실 요새 대새가 이런 영화인 것 같다, 시덥잖은 티키타카 대사를 툭툭 던지면서 관객들을 빨아당기는, 아주 잘빠진 영화들 말이다.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들, <베이비 드라이버>와 <지구가 끝장 나는 날>이 그렇다. 매튜 본의 <킹스맨>도 그렇다. 심지어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토르 라그나로크>도 그렇다!)과 A급을 흉내내는 C급들(굳이 무슨 영화인지 제목을 꼽지는 않겠지만, 돈을 때려박은 주류 "상업"영화들 중 상당수가 그러했다)이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서 오랜만에 컬트다운 컬트, B급다운 B급(또는 C급다운 C급)을 보았다. 여기서 B는 A,B,C,D의 B이기도 하고 비주류의 '비'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나치와 강령술사 라스푸틴의 결합만으로도 너무나 뜨악스럽고 으악스러운데, 그 라스푸틴에 의해 지상에 소환된 베이비 악마 "헬보이"가 초자연적 현상을 해결하고 악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최전선에 서게 된다는 설정도 으악으악 뜨악뜨악스럽다. 악마와 싸우는 악마, 괴물과 싸우는 괴물이라 당연히 고뇌하기도 하고 과연 내가 하는 짓이 잘하는 짓인가 후회하기도 하며 잘못된 선택을 내릴 "뻔" 하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헬보이에게 중요한 건 괴물로서의 고뇌가 아니라 오히려 "보이"로서의 고뇌일지도 모른다 - 나치가 불러낸 자신을 아들로서 키우게 된 박사에게 반항하고 대들고 말싸움하는 게 헬보이의 즐거움임을 상기할 때 더더욱 그렇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 "아빠 미워! 딴 집 아빠들은 아들한테 레고 사준다던데"라고 징징거리는 헬보이는 어이없는 만큼 귀엽다. 미녀 마녀에게 홀딱 넘어가는 것도 어이없는 만큼 그럴듯하다. 어릴 적 친구에게 집착하는 것도, 출생의 비밀에 집착하다가 나몰라라 잊어버리는 것도 모두 그렇다. 어쨌든 헬보이는 "보이"니까. 스파이더"맨"보다 한결 더 "보이"로서의 쾌활함과 유머러스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야기, 내러티브, 스토리로 승부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건 이 캐릭터성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럼 영화를 보러 온 관객에게 주려 하는 건 무엇일까. 촘촘한 긴장감이 아니라 순간의 짜릿함, 탄탄하고 촘촘할 것을 요구받는  주류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난잡한 쾌감이다. <헬보이>는 하드고어스러운  액션과 "타격감"으로 자신의 B급스러움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팔, 다리, 몸통, 머리가 따로 돌아다니는 건 차라리 애교스럽다. 몸이 반으로 잘리면 차라리 깔끔해서 다행이다. 지옥에서 온 소년답게 액션도 아수라장이다. 베고 찌르는 데 전혀 망설임이 없는지라 모든 장면이 과연 만화처럼 느껴진다. 



<헬보이>는 장르물로서, 컬트물로서, B급다운 B급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잘 누렸다. 쿠키영상은 다음 시리즈를 예고하는데, 다음 시리즈에는 이 기괴함을 더 잘 치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제 헬보이는 한차례 성장을 거쳐 헬보이와 헬맨 사이의 존재가 되었고 더군다나 헬보이 군단(Brigade 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기묘한 3총사)도 생겼기 때문에 하드고어로서든 슬래셔로서든 심지어 코미디로서든 좀 더 치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헬보이>에 주류스러움을 기대하는 건 장르물 및 장르팬들에 대한 배반 또는 배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음 헬보이를 기대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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