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영화광이 되었던 과정에 대하여
오랜만에 글을 쓰면서, 영화라는 것 자체에 대하여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아프리카의 생태에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아름다운 비행> 류의 영화였는데, 왜 그 영화를 엄마아빠와 함께 가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집 근처 한 호텔의 지하에는 극장이 하나 있었다. 관 서너개를 갖고 있는 나름대로 큰 극장이었고, 호텔 손님들이든 주변의 관광객이든 영화를 보러 자주 왔다. 초등학생 시절 영화는 대부분 거기서 보았다. 워낙 영화광인 아빠는 나에게 무슨 영화를 통해서든 영화의 맛, 또는 영화의 재미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는 완전히 성공했고 또 한편으로는 실패했다. 아빠의 딸은 그때 처음으로 보았던 영화와 영화관을 똑똑히 기억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한창 때의 아빠와 비등비등한 영화광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는 매일 영화관을 찾아가 표를 끊었고, 모든 영화를 이미 다 보았다 하더라도 무엇이든 한 번씩 더 보았으며, 서면과 남포동의 영화관을 하나하나 제패하다가 끝내 "무비팅"이라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신선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한 사람이니까 나는 아빠를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신 나는 집에 들어오는대로 영화채널을 틀어두고, 다른 스크린으로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재생하며, 그리고 수요일이나 금요일 저녁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간다. 아빠는 적어도 오천 편 정도 영화를 보았지 않았을까 싶고, 나는 앱 기록에 따르면 오늘을 기준으로 3143개의 영화를 보았다.
그뒤로도 그 영화관에서 많은 것들을 보았다. <라이언킹>과 <뮬란>을 보았다. 동생은 OST에 푹 빠져서는 VHR비디오를 맨날 틀어두고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웠다. 뜻은 모르되 그냥 영어 음성을 흥얼흥얼 따라하는, 말 그대로 라이언킹 주크박스였다. 호텔 지하의 영화관은 늘 적당한 규모로 사람이 있었다. 지나치게 쓸쓸하거나 또 번잡하지 않았고, 언제 가도 볼 영화가 있었다. 호텔에는 가족들이 많이 묵으니만큼,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걸 고려해서 상영 프로그램을 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시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전부 다 그 극장에서 보았다. VHR비디오가 나오는 대로 그걸 샀는데, 엄마는 나와 동생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요새 어머니들이 뽀로로와 핑크퐁에 의존하듯 뭐라도 틀어줄 게 필요했는지 몰라도 지속적인 비디오 공급채기 되어주었다. 한 번도, 비디오 좀 그만 봐, 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할머니 집에서 디즈니 전집 비디오를 모두 보았다. 덕분에 아주 옛날의 디즈니 영화들도 마치 지금 막 나온 것처럼 볼 수 있었다.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를 순서대로 다 보았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내 눈에는 최고의 미녀였고 백설공주가 만드는 애플파이는 탐날 정도로 참신했다(참새가 파이 생지를 자기 발로 콕콕콕 장식해준다, 놀랍다).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도 당연히 비디오 목록에 있었다.
우리가 조금 더 자라면서 영화관의 반경도 넓어졌다. 부산 시내의 영화관들은 거의 다 가 본 것 같다. 지금은 대하극장, 밖에 그 이름를 기억하지 못하지마 그때에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었고 남포동 영화거리 앞에는 호떡도 와플도 오징어도 있었다. 나는 영화관에서 오징어 냄새 맡는 걸 아주 싫어하는 까탈스러운 어린이였기 때문에, 또 팝콘이 입안에 돌아다니는 걸 정말 싫어하는 아주아주 까탈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에 맨날 지겨워하지도 않고 와플을 먹었다. 어쩔 때는 크림만주나 땅콩과자도 먹었지만,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와플은 영화관의 상징 같은 음식이었다. 딸기쨈과 생크림을 바른 와플, 초콜릿과 생크림을 바른 와플, 사과쨈과 생크림을 바른 와플, 때로는 딸기쨈과 사과쨈을 바른 와플. 아직까지 영화를 좋아하듯 아직까지 단 것을 좋아하는 게, 그것도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는 게 어쩌면 서로 아예 무관한 취향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관도 당분도 나에게 한 시간 삼십분, 또는 두 시간의 새로운 세계를 주었다. 컴컴해지는 순간 나는 혼자였다. 엄마와 아빠와 동생이 같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혼자였다. 그 극장 안의 삼백 명이 모두 혼자였듯이, 그리고 그들이 각자 자기의 세계로 들어갔듯이. 대한극장의 선물은 다만 와플과 아이스크림(대한극장 1층에 배스킨라빈스가 있었기 때문에 나오는 길에는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했다. 생각해 보니 엄마도 아빠도 참 당분 및 기타 영양성분에 관대하다못해 그를 부추기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두 사람 밑에서 태어나 행운이다)뿐만이 아니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개봉날 달려가서 본 극장이 바로 대한극장이었다.
대한극장의 가장 큰 관에서 <해리 포터>를 걸었다. 당연했다. 이미 예고편이 나오기도 전에 빅 히트를 칠 게 뻔한 영화였던 것이다. 내 친구들은 모두 해리 포터에 완전히 빠져 있었는데, 유행에 느린 나는 역시나 그 때문에 상당히 따돌림을 당했다. 지금도 한 남자애가 나한테 으스대면서 넌 퀴디치가 뭔지 아냐? 그리핀도르가 뭔지 알아? 라고 도발하던 모습이 똑똑히 기억난다. 해리 포터를 모른다고 따돌리다니, 귀엽기까지 한 따돌림의 이유였다. 그러다 나는 해리 포터를 읽기 시작했고, 하룻밤에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부터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까지 모두 읽는 데 그치지 않고 - 이것들은 모두 1,2권으로 분권되어 나왔다. 해리포터의 불의 잔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3권과 4권을 똥줄 빠지게 기다리는, 그리고 영어문고서점에 가서 신간 예약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단연 퀴디치가 문제가 아니라, 알버스 세베루스 포터라는 이름의 부적절함을 논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해리포터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영화간아 깜깜하게 변하기까지 엄청나게 긴 시간이 흘렀다. 아마 나는 틀림없이 불이 꺼지는 순간, 그리고 그 유명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뚱두두뚱뚱뚜둥, 뚜뚜뚜뚜뚜뚱), 영화관의 팔십 퍼센트 이상이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바로 이 순간, 상상했던 것이 시청각의 힘을 빌려 눈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서 우리는 몇 개월 동안 개봉하는 날을 기다리고 또 마침내 두 시간의 런닝타임을 견뎌내는 거라고. 그런 점은 지금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