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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Mar 31. 2017

매직리프가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사용자경험의 가능성을 여는 혼합현실(MR)

작년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으로 빠지지 않고 꼽혔던 회사, 그러나 과장광고와 거짓말의 논란에 휩싸였던 회사, 여전히 실체가 없는 회사로 과대평가된 거성인지 엄청난 잠재력을 품고 있는 성간물질인지 알 수 없는 회사가 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자리잡고 있는 실리콘밸리나 뉴욕 대신 플로리다 다니아비치가 근거지다. 아마 보안 문제 때문에 생뚱맞은 플로리다에 회사를 설립한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지만, 로니 애보비츠의 '매직리프(Magic Leap)'는 아직 어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런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글, 퀄컴, 알리바바, 워너브라더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유수의 기업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45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기록했지만 아직도 코어가 모오한 회사 - 현재 매직리프의 데모영상을 통해 추측되는 것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나아가 혼합현실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매직리프의 CEO 로니 애보비츠 (c)wired.com


과연 매직리프는 데모 동영상에서 공개한 바와 같이, 단지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안경 하나로 책상 밑에서 태양계 행성들이 움직이고 체육관에서 고래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등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혼합(Mix)할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을까? 오큘러스 리프트, 기어VR, HTC 바이브를 착용하지 않고도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시공간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을까. 작년 12월 IT전문지 '더버지(theVerge)'는 허위 마케팅 혐의로 고소를 당한 테라노스와 매직리프를 비교하며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헤드셋보다도 못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니 애보비츠는 공식 대응 없이 단지 "믿으라"는 트윗을 남겼을 뿐이다.


매직리프가 공개한 동영상 중 일부 : https://www.youtube.com/watch?v=vZRFcGrrsyc


혼합현실(Mixed Reality), 현실과 긴밀히 이어진 가상공간


그러나 비록 매직리프가 빠른 시간 안에 HW/SW 제품을 내어놓지 못한다 할지라도, 심지어 제대로 된 기술을 갖추지 못한 테라노스와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VR, AR 기술의 연장선상에서 혼합현실(MR) 기술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는 없다. 복합현실(Hybrid reality)이라고도 불리는 혼합현실은 단어 그대로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실물의 객체와 가상의 객체가 공존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사용자는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다양한 디지털 정보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사용자가 둘의 간극을 느끼지 못하도록 정교하게 섞는 것이 핵심으로, VR 및 AR로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가 (1) 현실과 가상을 차단하거나(VR) (2) 현실 위애  가상이미지를 더하는 대신(AR) (3)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결합해 또다른 융합공간을 구축하는 것이 혼합현실의 지향점이다. 즉 VR, AR, MR은 모두 가상의 3차원 이미지 정보를 사용자가 인터랙션할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지만 현실세계와의 차단 또는 현실세계 위의 증축을 각기 특징으로 하는 VR, AR과 MR은 다소 차이가 있다.


매직리프의 <a New Morning> 


MR은 3D의 가상 입체 영상을 사용자가 실제로 위치한 현실 공간에다 그대로 구현함으로써, 마치 가상의 이미지가 실제인 것처럼 느끼면서 교감하고 몰입(Immerse)할 수 있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MR은 공간을 재구성하고 그 가상의 공간과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교감하는 ‘공간 컴퓨팅’을 가능하게 만든다.


"인간의 뇌를 GPU로", AR에서 MR로 나아가는 회사들


현실에 가상 이미지를 투영한다는 점에서 MR은 AR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면이 있다(물론 VR, AR, MR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여러 회사들이 이런 특성이 혼재된 콘텐츠를 제공 또는 지향한다). 현재 AR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은 현실과 가상의 완벽한 융합을 위해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매직리프가 우선적으로 상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 역시 웨어러블 AR 솔루션이다. 다만 MR은 애보비츠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의 뇌가 "GPU(Graphics Processing Units)" 역할을 하여 공간과 인터랙션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매직리프는 사용자의 눈에 가상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투사하는 '포토닉스' 하드웨어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가 가상의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여러 기술적/경제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파일럿을 제외하고는 현재 만족스러운 수준의 AR/MR 콘텐츠를 보여주는 회사는 드물다. 다만 많은 파일럿들은 사용자가 현실 위에 "증축된(Augmented)" 가상의 콘텐츠와 인터랙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가 그 대표적인 예로, 작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연한 '홀로포테이션 채팅'은 HMD를 활용,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사람이 실제로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홀로렌즈를 활용한 MR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NASA와 마이크로소프트가 함께 진행 중인 화성탐사 프로젝트 <Destinaton : Mars>라든지 <Enabling a world of Mixed Reality>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유한, 실제와 가상을 실시간으로 혼합하는 정보처리기술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구글의 '프로젝트 탱고'도 AR경험을 확장해 MR을 제공하려 한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디바이스 주변의 공간을 3차원으로 맵핑한 후, 그 위에 가상의 이미지를 배치한다- 프로젝트 탱고를 이용한 증강현실게임 <Phantogeist> 는 MR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인텔은 2016 인텔 개발자 컨퍼런스(IDF)에서 '프로젝트 얼로이'를 통해 MR에의 관심을 보여주었고, 일본 주오대 연구진은 지진해일이 덮치는 순간의 영상과 해안가의 실제 영상을 연결, 지진해일을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으로 MR을 응용하고자 한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아이플루언스'는 궁극적으로 어떤 웨어러블의 도움도 없이 현실과 가상세계를 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AR 스타트업 거인 블리파(BlippAR)도 AR 기술을 고도화할 것으로 보인다.


MR에 대한 회의와 도전, 사용자를 위한 콘텐츠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 수 있으려면 서로 다른 영상들의 좌표를 파악하여 원근감을 조정하고, 별도의 장비 없이도 360도 어느 방향에서든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기술이 요구된다 - 수백 개의 시점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합쳐 실시간으로 고품질의 가상 이미지를 렌더링할 수 있는 기술은 필수적이며, 나아가 VR과는 달리 MR은 현실과 사용자를 차단하지 않기 때문에 두 세계의 시점을 일치시켜야 하는 것이다. '트래킹(Tracking, Visual Alignment)', '로컬리제이션(Localisation)'이라 불리는 이런 시점 일치의 문제점이 MR에 제기되는 가장 큰 기술적 어려움으로 꼽힌다.


이외에도 VR이나 AR과 더불어, MR 기술 및 콘텐츠가 사회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 보다 심도 있고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움직임도 있다. 이와 같은 질문이 가능해졌다는 것 자체가 관련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현실을 방증하기도 한다. 과연 MR을 활용해 사용자의 경험을 가치 있는 방향으로 제고할 수 있는가, 아니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오히려 현실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킬 뿐인가? 즉 예전에는 VR, MR에 있어 제작자 중심의 관점에서 "어떤 정보를 어느 디바이스를 활용해 어떤 방식으로 제시할 것인지"가 제일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특정한 상황과 문맥에 처해 있는 사용자와 가상의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무리 없이 연결할 것인지"의 감상자 중심 관점이 요구되는 것이다.


기술적 구현(Technological actualisation)과 감정적인 자극(Emotional evocation)을 동시에 고려하며, MR 콘텐츠가 가질 수 있는 편재성(Telepresence)이라는 강력한 힘을 최대화하기 위해 시각, 청각, 촉각, 심지어 후각과 미각까지 활용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할 것이다. 비록 매직리프가 거짓말을 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해당 분야에서 전력을 다하는 회사들이 많고, 기술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며, 소비자의 상상력은 열려 있다. 체육관에서 고래를 뛰놀게 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충분치 않다.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혼합현실 콘텐츠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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