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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Mar 31. 2017

패션도 기술이 필요해

패션테크 스타트업, 기술과 예술의 믹솔로지

핀테크, 푸드테크, 애그리테크, 헬스테크, 뮤직테크 등의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의 결합을 통해 다양한 비즈니스들은 예전과 그 모습을 달리 하고 있다. 특히 패션테크는 웹서밋과 같은 글로벌 테크 컨퍼런스에서 별도 주제로 채택되어 세션이 진행될 만큼 인기가 높고, 다양한 산업군의 이목을 동시에 집중시킨다. 패션과 기술, "양극단에 위치한 두 산업(Two polar opposite industries)"의 접점은 점점 더 넓어지고 또 깊어지는 중이다. 


전통적인 견습생 또는 도제 방식의 생산과정과 "브릭앤모타르(Brick-and-mortar)" 매장을 통한 판매방식이 여전히 대세인 패션산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술은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을 배우는 것이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하나의 덕목이 되고 있으며,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오프라인 리테일 매장에서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술을 사용할 필요성도 증가세다. 패션이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는 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이를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소비자와 공급자를 투명하게 연결하는 테크놀로지


패션 상품은 중고차만큼이나 "알 수 없는 과정"을 거쳐서 소비자에게 도달한다. 소비자는 부지불식간에 때로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한다. 경제학적인 비효율성을 유발하는 패션산업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소비자와 공급자를 디지털 세계에서 투명하게 연결하는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복잡한 생산공정, 얽히고 섥힌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거치며 비효율적으로 가격이 매겨지는 경우를 지양하고,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패션 생태계 전반의 불투명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소비자와 공급자를 즉각적으로 연결하는 온디맨드형 스타트업은 패션 세계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디자이너와 소비자의 인터랙션을 돕는 스타트업 '19th Amendment'는 소비자가 특정한 디자인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구매 의사를 표시하면, 그 의사를 바탕으로 디자이너들이 제품을 수정한 후 해당 상품을 주문 받은 수량만큼 생산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구매 가능 기간에 제한(19일)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들어온 주문에 대해서만 생산이 진행되므로 디자이너는 재고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고객은 자기의 의견이 반영된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이처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극을 메운 19th는 보스턴글로브에 의해 최고의 스타트업(2014)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디자이너를 위한 직판 플랫폼을 제공하는 '블링크',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의 상품을 선주문(Pre-order)할 수 있는 '모다오페란디' 등이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


3D 프린팅과 웨어러블, 패션산업의 새 동력 


현재 3D 프린팅과 웨어러블은 패션업계가 가장 주목해야 할 기술로 꼽히고 있다. 완전히 상용화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지만, 3D 프린팅은 누구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메이커들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3D 프린팅으로 직접 치아교정기를 만든 대학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IT 전문 조사기관 가트너에 의해 몇 번이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전략기술(Stategic technology)"로 선정되었던 3D 프린팅은 이제 실질적으로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Practical technology)로 거듭나는 중이다. 


이미 다수의 패션 스타트업들이 3D 프린팅을 활용하고 있다.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설립된 니탄(Knyttan)은 네타포르테의 CEO 파스칼 캐그니, 파페치의 CEO 조세 네브스로부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다. 기존의 니트의류 생산과정을 단순화하기 위해 3D 프린팅 기술을 차용하여 기존의 4% 수준, 즉 평균 90일에서 90시간으로 제작 시간을 단축했다. 대개 한 디자인의 니트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산단위가 최소 50장 수준인 것에 비해, 3D 프린팅 기술로 단지 한 장이라도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이처럼 3D 프린팅 기술은 효율적인 생산을 가능하게 하며, C2B2C 형태의 온디맨드형 소량생산 구조를 기대할 수 있게 돕는다.


대닛 펠렉의 "누구든 집에서 옷을 만들 수 있는" 3D 프린터 제작공정 


한편 디자이너 안드레아스 바스티안(Andreas Bastian)은  3D 프린터를  활용,  유연한  플라스틱  메소스트럭쳐(mesostructure)를 재료로 옷을 만들었고 대닛 펠렉(Danit Peleg)은 “누구든 프린터를 이용해 집에서도 당장 제작해 입을 수 있는 옷(ready-to-wear collection)”을 디자인했다. 대닛 펠렉이 런웨이용 의류를 제작하는 데에는 각각 40시간 정도가 걸렸지만, 일상복을 디자인하는 데에는 이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 걸린다. 대닛 펠렉의 말처럼 누구든 "가방 없이 여행을 떠나 호텔 룸에서 필요한 옷을 인쇄해 입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올지도 모른다.


또한 IoT를 위한 기반기술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지금, 비록 애플워치 등 기존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판매실적이 예상을 밑돌았을지언정 시장의 잠재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중론이다. 특히 웨어러블이 제공하는 기능(feature)이나 기술 수준에 있어 이미 소비자들이 신기함보다는 익숙함을 느끼는 만큼, 이제는 과연 "실제로 입고 다닐 만한가(Is it the one that you actually want to wear)", "불편하지는 않은가"의 여부가 웨어러블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웨어러블 개발사 미스핏츠(Misfits)의 창업자이자 지금은 파슬 그룹의 커넥티드 디바이스 부문 CTO를 맡고 있는 소니 뷰 역시도 사람들이 착용하고 싶어하는지가 웨어러블의 제일조건이라고 꼽았으며, 아날로그와 디지털, 패션의 세 꼭지점이 적절히 맞물려 돌아가야만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보편화된 웨어러블 워치만 해도, 단지 스마트한 기술과 아날로그 시계를 합치는 데 그치지 않고 패션브랜드의 강점, 즉 디자인적 면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웨어러블을 경쟁력 있는 패션 프로덕트로 만들어야만 패션브랜드도 IT기업도 다양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판매하여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도 간과할 수 없는 대세


한편 디지털 플랫폼의 근간을 이루는 빅데이터나 인공지능과 같은 키워드 역시 패션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제 방식의 생산 모델을 따르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업계임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어낼리틱스와 예측모델, 머신러닝과 딥러닝이 환기하는 혁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자동화 추천이나 가상쇼핑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패션브랜드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버버리와 토미 힐피거, 루이비통 등 클래식을 상징하는 패션브랜드들이 챗봇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패션브랜드들은 스토어에서의 고객 경험을 중시하여 챗봇 등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하는 데 머뭇거린 경향이 있었으나, 고객의 데이터를 통해 선호나 취향을 미리 파악하고 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만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에 챗봇, 컨시어지, 나아가 "대화형 커머스(Conversational commerce)"로의 흐름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지지 하디드 컬렉션의 판매를 위해 토미 힐피거는 페이스북에서 챗봇을 운영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시장을 실제적으로 파악하려는 움직임도 드세다. 거래 채널이 다양해질수록 내용도 복잡해지기 마련인데, 이에 빠르게 대응하여 생산라인을 최적화하려면 시장에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거래가 진행되는지 신속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머신러닝을 활용한 예측모델(Predictive Analysis)을 사용할 경우, 시장의 변동을 예측하고 미리 생산 라인을 최적화하거나 재고를 관리할 수 있다.

에딧티드는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패션테크 스타트업이다


이와 같은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는 ASOS, GAP, 바나나리퍼블릭, 네타포르테 등과의 협업을 통해 이름을 알린 에딧티드(Edited)가 있다. 2009년 영국 런던에 설립된 패션 데이터 분석 서비스 회사로, 2013년 패스트컴퍼니에 의해 "가장 혁신적인 패션회사 BEST 3"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에딧티드는 "세계 최대의 패션 데이터 웨어하우스"를 지향하며, 매장 데이터와 SNS 데이터를 불문하고 관련된 데이터를 모두 끌어모아 그를 분석한다. 패션하우스는 이를 통해 앞으로 어떤 스타일이 유행할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장 경영에 있어 적절한 가격수준이 얼마이며 마케팅은 어떻게 집행해야 할지 결정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즉 시장의 반응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상품을 적절한 가격에 적절한 수량으로 (Appropriate product, appropriate price, appropriate quantity)”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미국의 스타일세이지(Stylesage), 영국의 WGSN등이 패션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제공하여, 과소/과대 생산을 방지하고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똑똑하고 민첩한 패션을 기대하며


이외에도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런웨이와 연구소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구글 역시도 ATAP(Advanced Technology and Project) 부문에서 프로젝트 재카드(Project Jacquard)를 운영, 의류나 주얼리와 같은 패션용품을 스마트하게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다- 옷감을 직조하는 과정에서 햅틱 자극에 반응하는 센서를 집어넣은 스마트 패브릭을 만드는 등이다. 3D 프린팅 주얼리 시장이 2020년까지 약 1백1십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버버리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인터랙티브 스토어의 상징이 되었으며, 랄프로렌과 탑샵이 VR 패션쇼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기술과 예술의 '믹솔로지'가 다방면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정체되어 있던 산업의 구석구석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비록 많은 회사들이 변화와 혁신을 감내해야겠지만,  데이터를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고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의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패션회사는  “똑똑해지고,  민첩해지고,  적극적으로(Informed,  agile  and proactive)” 진화하며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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