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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Aug 14. 2017

퇴사일지 #1

퇴사 꽃다발과 삶의 불확실성

오늘은 내 생애 두번째 퇴사일이다. 퇴사를 축하한다는 꽃다발과 케이크를 받았다. 주위로부터 이것저것 선물을 많이 받았고 아쉬움이 섞인 인사도 나누었다. 대학원에 가는 것이 명분이니 민망하거나 마음 상할 일 없는, 축하받기 좋은 퇴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 속의 나는 알고 있다. 엘리베이터와 출입게이트를 뒤로 하는 순간 과연 내가 대학원에 갈지, 아니면 동생이나 친구들이 부추기듯이 세계 여행이라도 떠날지, 또 아니면 첫번째 퇴사 후처럼 이른바 “멘탈 붕괴” 상태에 빠져버릴지, 허덕거리며 아르바이트를 찾을지, 그보다 더 나쁜 선택을 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도달해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스시처럼 보이지만 맛있는 케이크이다




첫번째 퇴사 전에도 이런저런 일을 했었기 때문에, 그토록 고통스러운 상황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학생 겸 프리랜서로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고 공연도 했다. 그러다 방송국에 PD로 입사했는데, 나까지합쳐 입사동기라곤 고작 다섯 명뿐이었다. 물론 나 빼고는 모두 아직 잘 다니고 있다. 다들 방송국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이미 알고 있었던, 그리고 충분히 준비와 각오와 공부가 되어 있는 친구들이었다. 단지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막연하게 나와 맞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던 나와는 달랐다. 입사에서 퇴사까지 몇 개월, 돌이켜볼 때마다 내가 너무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격무를 처리해낼 끈기가 없는 내가 잘 해 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국을 나온 바로 그 다음날부터 닥쳐오는 공허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몸 힘든 거 하나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다니, 라는 자괴감 때문에 집밖을 나가기가 싫었다. 충동적으로 이것저것 저지르고 다니던 딸이 이제 자리를 잡나 싶어 부모님도 안도하셨을 텐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또다시 충동적으로 사고를 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마구 솟아났다. 뭘 해야 좋을지 몰랐다.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이대로 내 자신을 내버려두었다간 나도 스스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마음을 좀먹었다. 세상의 수많은 감정과 상황 중 사람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것은 그런 불확실성, 또는 불안정성일 것이다.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과 이 사람이 과연 나를 좋아할까, 라고 물음표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당연히 전자를 고를 것이다.


마침표보다 물음표가 무겁다.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그리고 그 선택 너머의 앞날을 상상할 수 없을 때, 한 치 앞을 바라보기도 힘들 때, 안개 속에 갇힌 기분일 때 사람은 돌멩이나 가구처럼 망가진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가스비와 수도세를 낼 이유가 없어진다. 일상적인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감각이 빠르게 녹슬어 버리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상황이란 나한테 물음표만을 실컷 던져줬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대체 뭘까. 이러다 결국 나에게는 아무 것도, 어느 사람도 남지 않는 것일까. 외로움을 극심하게 타는 성격인지라,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을 잘 대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나 글에 능한 성격도 못 되면서 나 혼자있는 상황이 제일 두려웠다. 돈을 못 벌 수도 있다는 것, 생계를 꾸려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은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집밖에 전혀 나가지 않아도 세상 사람 하나 신경쓰지 않는 상황이 온다는 것, 혼자 방안에 갇혀 사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너무나 그럴듯하게, 그리고 코앞에 닥쳐 있는 것처럼 절실하게 느껴졌다.


첫번째 퇴사 후 나에게 제일 필요했던 것은 나로 하여금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끔 하는 강제, 또는 어떤 삶의 패턴이었던 것 같다. 돈도 필요했고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할 건덕지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확실성이 필요했다. 내 자신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때 다니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대학원에 원서를 내 들어갔고, 새로운 직장에도 원서를 냈다. 모든 게 성급했다. 제대로 된 고민이라곤 없었다. 너무 빠르고 너무 부족했고 너무 생각이 없었지만, 두려움에 압도된 나로서는 불확실성을 탈출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년 팔 개월을 새로운 곳에서 일했고, 사회생활로만 따지면 사 년 내지 오 년 정도는 한 셈이 됐다. 결코 길지 않다. 너무 짧다. 그러나 또 마냥 어리지는 않은, 그런 나이가 됐다.


두번째 퇴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라면 대학원에의 합격이 맞다. 그러나 나는 내가 대학원에 갈지 아직 모른다. 당장 9월부터 시작인데, 아직 한치를 모른다. 불확실성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 년 팔 개월 동안 나는 이 직장에 생활 패턴을 맞춰 왔는데, 또다시 삶의 촉수란 게 망가질까 봐 두렵다. 이 직장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친구도 사귀었다. 그런 것들이 사라질까 봐 두렵다. 누구는 나한테 걱정이 너무 많다고 하고 또 누구는 나한테 그 어려운 직장에 들어가서 좀 더 다니지, 라고 생각이 없음을 나무란다. 누구는 나에게 지금 이 시기가 적기이니 당장 학교에 가라고 하고 누구는 휴식기간을 좀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물론 나는 여기 이 직장에서 좀 더 일을 하고, 적당히 나이가 찰 때를 기다리고, 때가 무르익으면 결혼을 하고 어쩌면 아이도 낳고,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또는 적당한 때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다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능성이란 것은 불확실성의 또다른 이름이다. 가능한 삶을 생각하면서 나는 학교에 가겠다고 너무 호언장담해 버린 건 아닌가, 심지어 퇴사를 철회해야 하는 건 아닌가 벌벌 떨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자리를 다 정리했다. 컴퓨터를 반납했다. 출입카드와 법인카드를 반납했다. 이제 아무것도 없다. 희끄무레한 안개,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누구는 홀가분하다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는 정말 여행 가방을 싸서 남미로 가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누구는 또 어떤 직장이든 찾아 일을 다시 시작하려 할지도 모른다. 누구는 어렵게 얻어낸 합격을 날리지 않고 대학원에 무사히 진학할 테고, 누구는 정말 머리를 싹 비우고 휴식을 취하려 할지도 모른다. 한때는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정해진 사람과 장소에 얽매여 있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절반의 진실, 익숙한 사람에게는 서툴고 낯선 사람에게는 친절한, 3분짜리 외형성과 3년짜리 내형성을 가진 철부지의 다른 면임을 차마 알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나의 외로움이 가장 걱정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밤마다 고민할 것이 걱정이고, 불확실한 상황 자체를 견디지 못하고 성급하게 굴기 일쑤인 성미가 걱정이다. 오로지 나의 결정과 나의 선택으로 불확실성을 타파해 나가야 하는데, 그런 내 자신의 심지가 꿋꿋하지 아니함이 제일 걱정이다. 당장 오늘 저녁에 누구한테 전화를 하며 이 마음을 털어놓을까, 생각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음에 걱정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불확실성의 시대가 왔고, 나는 싫든 좋든 어떻게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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