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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Mar 31. 2017

VR,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지

지금의 VR에 던져지는 질문들

VR 원년, 그 이후


2016년은 VR이 정말 "핫해하태"를 온몸으로 외치는 키워드였다. "가장 트렌디한 서비스의 집합"으로 불리는 SXSW나 세계의 내노라하는 테크-긱들이 모두 모이는 GDC에서부터 한해를 마무리하는 가트너 심포지움과 리스본 웹서밋(아직까지는 더블린 웹서밋이라는 말이 익숙하긴 하지만)에까지, VR이 위상을 뽐내지 않는 자리가 없었다. 2016년을 "VR의 원년(The first year of VR)"으로 꼽은 미디어도 많았다. 주요 VR HW/SW 제공 회사들이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HMD를 본격적으로 출시 및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큘러스의 리프트, HTC의 바이브, Sony의 플레이스테이션VR이 2017년 말까지 총 800만대를 출하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은 데에 삼성의 기어VR과 MS의 홀로렌즈가 가세했다. 마켓앤마켓, 슈퍼데이터 등의 리서치 회사들은 2020년까지 VR 시장이 한화 약 1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원년이 지난 지금, VR은 "혁신기술(Innovative tech)", 또는 "유행하는 기술(Trendy tech)"을 넘어서서 소비자의 일상을 실제적으로 바꾸는 기술(Transforming tech)로 진화하고 있을까? 작년 한 해 동안 생각보다 부진했던 HMD의 판매, 킬링콘텐츠의 부재, 소비자들이 여전히 체감하고 있는 "VR 멀미" 등을 이유로, 발전의 속도가 생각보다 더딘 것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구글 등이 보여주는 파일럿 영상만큼의 서비스를 실제로 기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VR과 소비자 사이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 적어도 누구든 구글 카드보드 HMD를 착용하고 유튜브의 360 콘텐츠를 감상하며 앞으로의 VR을 상상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VR 시장에 던져지는 질문, 그리고 기대할 만한 대답은 무엇일까?


센서로마에서 출발, 컨슈머 테크놀로지로 안착


사실 VR은 AI, 자율주행 등과 마찬가지로 의외로 역사가 깊은 기술이다(하룻밤 새에 뿅, 하고 모자 속 토끼처럼 새로운 기술이 튀어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1950년대부터 기본적인 개념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1956년에는 실제로 '센서로마(Sensoroma)’라 불리는 몰입형 기기(Immersive machine)가 등장하기도 했다. 1980년대 PC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VR 시장이 동반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지고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이 그런 열망에 불씨를 붙였지만 사실상 본격적인 상품화에는 실패했다. 그러다 마침내 3차원의 영상을 처리 가능한 소형 기기, 즉 HMD 같은 디바이스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VR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상용화될 수 있는 컨슈머 테크놀로지, 또는 “커먼 테크놀로지(Common technology)”로 새삼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VR 기기로 불리는 '센서로마'


소비자와 VR 기술 사이의 문턱이 낮아진 만큼, 이제는 VR 기술 자체를 고도화하는 데 전력을 쏟기보다 실제 사용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또 어떤 식으로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VR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VR은 왜 중요한가? VR 콘텐츠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그 감상자로부터 "궁극적인 공감(Ultimate Empathy)",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부터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을 "놀라운 수준"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VR을 위한 새로운 스토리텔링


새 술을 헌 자루에 담을 수 없듯이, VR콘텐츠의 몰입감을 최대화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구글, 고프로 등도 "단지 360 콘텐츠 제작 기술로는 완전한 VR을 만들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비록 360 콘텐츠와 VR 콘텐츠가 다소 혼용되고 있으나, 소비자가 고정된 시점에서 360도로 주위를 살펴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디지털 세계로의 완전한 이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조명, 모션, 사운드 등 콘텐츠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런 고려를 통해 "VR 멀미"와 같은 이질감이나 어지러움 등은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VR 기술을 활용한 영화, 게임, 음악, 건축 등 다양한 형태의 스토리텔링이 실험되고 있다. 예컨대 영화 관람객들에게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The land of Hope and Glory>는 3D 프린팅과 VR 기술을 활용, 스톱모션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UN은 시에라리온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자 <Clouds over Sierra> VR 영화를 만들었다. '올드 미디어' 뉴욕타임즈는 VR 앱을 제작, 독자들이 사건을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처럼" 경험할 수 있게끔 기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작성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카니에 웨스트, 그린데이, 코트니 러브 등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아티스트로 유명한 크리스 밀크는 텔레비전 쇼의 스토리텔링을 변주하기 위해 VR 기술을 동원했다 - TV쇼 'Saturday Night Live'의 진행자 제리 사인필드가 특정 출연자를 지명할 때, 시청자는 마치 SNL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출연자의 표정과 반응, 그 주변인들이 웃는 모습을 살필 수 있게끔 콘텐츠를 제작한 것이다. 


크리스 밀크의 SNL 촬영


VR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VR을 활용해 소비자와의 인터랙션을 제고하는 마케팅 콘텐츠들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맥도날드의 해피밀 박스는 무척 재미있는 사례로, HTC의 바이브를 사용하여 마치 소비자가 해피밀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소비자가 양 손에 페인트 휠과 페인트 건을 쥐고 해피밀 박스 안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게끔 콘텐츠를 설계했다.


소비자가 직접 해피밀 박스 안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 맥도날드


몰입력 있는 VR, 궁극의 감정이입


이처럼 VR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용자들을 다른 세계로 옮기는 데에 그 힘과 의의가 있고, 사용자들이 다른 세계로 "매끄럽게" 이동했다는 느낌을 받으며 그 세계를 즐기기 위해서는 디지털 콘텐츠가 사용자의 행위에 반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NASA와 마이크로소프트가 함께 진행하는 가상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서는 3D 시뮬레이션으로 화성 표면을 재구성하여, 홀로렌즈를 착용한 과학자들이 실제로 화성 위를 걸으며 암석을 주워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반응형 콘텐츠(Responsive contents)를 설계하려면 당연히 막대한 메모리와 고성능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 "제3자의 시선"으로 모든 방향의 모든 오브젝트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특정 오브젝트와는 인터랙션이 가능해야 사용자는 비로소 그 가상의 세계에 몰입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 정도 수준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 및 HW를 갖춘는 기업 및 제작자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현실적인 회의감을 당장 해소할 수는 없을지언정, VR이 1950년대 센서로마에서 지금의 오큘러스, 삼성, HTC에 이르기까지 어떤 전철을 밟아왔을지 상상해 본다면 VR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기술의 발전을 불러일으키고 또 기술의 발전이 수요를 증폭시키는 선순환으로 들어서지 않을지 기대해 볼 수 있다. 결국 VR이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해결되지 못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고, 또 그만큼 상상의 여지를 펼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VR은 아직도, 여전히,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하여, "궁극의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기대되는 유망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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