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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May 11. 2017

투명한 인생, 패터슨

변하지 않아 좋은 것들

짐 자무쉬의 감독 중 가장 잘 만든 영화로 이를 꼽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오직 사랑하는 자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를 가장 아름다웠던 영화 중 하나로 기억하듯이, <패터슨(Paterson)>은 가장 청량하고 투명하며 시적인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커피와 담배>도 <천국보다 낯선>도 모두 좋아하지만 앞의 두 영화만큼 여러 번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오직 사랑하는 자들만이 살아남는다>가 집중해 보고 싶은 영화라면, <패터슨>은 청소를 할 때, 옷장을 정리할 때, 빨래를 돌릴 때, 밀린 잡일을 처리할 때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싶은 쪽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벌써 2017년의 절반 가까이 지났다. 절망적이다. 매년 하지가 되면 나는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버린다. 해가 짧아진다는 것도 안타까울 뿐더러 한해가 너무나 허망하게 지나간다는 것을, 어느새 겨울이 온다는 것을 (“Winter is Coming”이라고 네드 스타크가 누누히 말했다...)뼈저리게 실감한다. 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동지 역시 나름대로 안타깝지만 하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 무기력과 게으름, 허무함, 역시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작심삼일의 극치를 상기시키는 날이다.



뉴저지에 사는 버스 운전기사- 얼굴이 길쭉하고 표정이 거의 없는 애덤 드라이버만큼 이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 어려울 듯 하다. 운전대에 앉아 승객들이 늘어놓는 비슷한 수다를 듣는다. 똑같은 길을 돌다 퇴근하면 집에는 여자친구와 강아지가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돌아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걸로 그의 하루는 끝이 난다. 단조롭고 지겨울 만 하다. 매일 똑같은 정류장을 지나 비슷한 사람들을 태우는 그는 어쩌면 매일 지겨워, 지겨워 말을 달고 사는 우리 인생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본평균 같다.



매일매일 똑같이 보내고 있다. 진심으로 올해는 이러지 말자, 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으면 뭔가 바뀔까(그러지 말자, 라는 다섯 글자를 핸드폰에 적어놓은 친구가 있었다). 겨우 일어나서 출근하고, 점심시간까지 커피를 세 잔 마시다가, 오후에는 커피를 한 잔 아니면 두 잔 마신다. 약속이 없는 날 집에 오면 빵을 먹고, 영화를 좀 보다가 야구 결과를 확인하고 밤늦게 잔다. 영화관에 가는 약속이 있는 날은 꽤 신난다 해도, 술 약속이 있는 날은 순식간에 끝나버릴 게 뻔한 축제날이다. 이 회사 1년만 다녀야지 생각했지만 벌써 훨씬 넘었다. 재미없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망했다, 망했다. 넋두리를 일기로 썼으면 실록만큼 쌓였을 텐데 그런 끈기도 없다. 한때 일기를 어떻게 그리 열심히 썼는지, 무슨 글이라도 써낼 힘이 있었는지, 대체 그 힘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그러나,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터슨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다시 잠에 든다. 그리고 패터슨은 시인이다.


책을 출판하거나 상을 받은 유명한 시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는 그 나름대로 매일 좋은 글귀를 생각해 하나하나 공책에 적어 놓는 시인이다. 조용한 일상과 소박한 글귀를 가진 패터슨은, 공기와 물보다 더 귀한 것들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공책을 강아지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해도, 깊은 상실에 빠져 길길이 날뛰고 싶은 순간이 온다 해도, 그에게 변함 없는 일상이 찾아오고 새로운 공책에 쓸 말이 떠오른다. 가끔은 여자친구가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거나 집 안의 인테리어를 바꾸기도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특이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일견 소모적으로 보이는 일주일 속에는 나름의 변주와 의미가 숨어 있다. 


변해서 좋은 것도 있고, 변하지 않아 좋은 것은 너무 많다.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또 일어나는 것. 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는 것. 강아지가 문 앞에서 낑낑거리며 산책을 가자고 매일같이 조르는 것. 할 일이 있는 것. 좋아하는 일이 있는 것.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 의미없는 날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패터슨이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들이 조약돌처럼 널려 반짝인다. 얇은 물줄기 같은 이 영화가 귀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이유다. 유별나게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고생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고생에 대한 보답도 어디에나 흩뿌려져 있음을 짐 자무쉬는 전혀 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요새 많이 지친 건지, 달달 닦인 건지, 깊이 생각하고 노력해 본 적도 없으면서 상상만 해도 진저리가 나는 상황에 빠져버린 건지, 이래저래 난감하기는 하다. 그러나 좀만 제대로 쉬면 안 될까. 그리고 조금씩 나를 다잡아나가면, 버스 운전을 하듯 규칙적으로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춤을 추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을 꾸려나가면, 그도 아니라면 그냥 지금처럼 출근과 점심식사와 퇴근으로 방점을 찍는 매일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곁에 있는 누군가, 하고 있는 어떤 일을 동글동글한 조약돌로 생각하면 안 될까. 어찌됐든 세상의 끝에 가더라도 커피와 영화만큼은 있지 않은가. 설사 여태까지 그나마 써 놓은 영화 메모가 전부 어디로 증발해 버린다 해도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핸드폰이든 노트북이든 다 22층에서 떨어뜨려 버릴 것 같지만), 수십 번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가 있지 않은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은 할 수 있지 않은가. <패터슨>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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