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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Jun 02. 2017

빌런의 역사, 캐리비안의 해적

설득력은 없어도 매력이 철철

<캐리비안의 해적>이야말로 생명연장의 꿈을 달성한 시리즈물의 대표로 꼽아야 할 듯 하다. <매트릭스>와 같은 SF 트릴로지,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 트릴로지 등이 대세를 이루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과 같이 나름대로 완결성이 있는, 그러나 또 후속편의 여지를 남겨주는 시리즈물이 연이어 등장했다. 하나의 세계관(우주관) 아래에서 캐릭터들이 성장하고 다른 캐릭터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시리즈물의 최대 즐거움이다. <캐리비안> 시리즈 역시 전무후무한 캐릭터 ‘잭 스패로우’를 탄생시켰고, 조니 뎁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시리즈는 빠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캐리비안>은 소설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고, 첫편부터 어느 정도 공고한 세계관을 갖고 있던 것도 아니고, 독특하긴 하지만 견고하지 못한 캐릭터들로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서서히 초반의 신선함을 잃어갔던 것이 사실이다. 후속편을 위한 미끼를 수없이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속시원하게 해결된 미스터리는 거의 없었으며, <캐리비안> 전체를 관통할 만한 메시지 또는 가치체계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네 번째 시리즈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를 페넬로페 크루즈의 매력으로만 참고 보기엔 힘들었고, 디즈니월드의 어트랙션 하나에 의존해 영화를 제작하기엔 무리가 있나, 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잭 스패로우의 특이한 행동으로만 런닝타임 전체를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 1편부터 3편까지 이야기를 지탱했던 두 인물, 윌리엄 터너(올랜도 블룸)와 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리)가 사라지자, <캐리비안의 해적>이 보여주던 세계도 필연적으로 침잠했다.


그러나 <캐리비안>은 다섯 번째 시리즈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시계를 뒤로 돌리는 대신, 다음 세대로 내려왔다. 조니 뎁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고려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편으로는 엘리자베스와 윌의 이야기를 다시 <캐리비안>의 주춧돌로 삼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플라잉 더치맨’이 내린 저주를 극복하고 낳은 아들 ‘헨리 터너(브렌튼 스웨이츠)’가 등장해 잭 스패로우와 랑데부를 가진다. 헨리 터너는 아버지의 저주를 풀기 위해 신화에 등장하는 ‘포세이돈의 창’을 찾으려 하고, 전설적인 잭 스패로우의 힘을 빌리려 한다. 똑똑하고 아름다운 천문학자 아가씨 ‘카리나 스미스(카야 스코델라리오)’가 등장하는 이유도, 엘리자베스-윌 세대를 이어나가며 헨리-카리나로 하여금 <캐리비안>의 세계를 지탱하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는 제목도 <캐리비안>의 출발점에 충실하여 1편에 나온 대사를 빌려왔다.


결과적으로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시각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단어 그대로 볼만한 ‘스펙터클’을 많이 품고 있다. 1편 <블랙 펄의 저주>가 아기자기하고 키치한 맛이 있었다면 2편 <망자의 함>은 세계를 확장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고, 3편 <세상의 끝에서>는 던져놓은 미끼에 걸맞은 볼거리를 선사하고자 했다 (4편은 논외로 하겠다). 5편은 그에 더하여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장면들 - 물 위를 뛰어다니는 망자들, 홍해처럼 갈라지는 바다, 우주를 옮겨놓은 듯한 보석섬 -을 선물한다. 그러나 눈이 황홀한 대신 이야기는 지루하다. 잭 스패로우의 신선함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카리나와 헨리의 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지루한 것인지 하나로 단정짓기는 힘들다. 게다가 5편이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확인시킨 사실은, 진정한 <캐리비안>의 공신은 빌런인 듯 빌런 아닌 빌런 같은 남자, 캡틴 바르보사(제프리 러시)였다는 것이다.



해적 중에 빌런이 아닌 자가 있겠냐만은, 캡틴 잭 스패로우가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그 반대편에서 줄을 팽팽하게 당기는 빌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잭 스패로우의 비호감적 언행을 귀엽게, 그럴 듯하게 만들어줬던 것은 데비 존스의 저주 또는 커틀러 베켓의 야욕이라는 일종의 대의였다. 게다가 5편의 빌런을 맡은 하비에르 바르뎀은 손동작 하나까지 너무나 막대한 무게감을 자랑하여, 잭 스패로우에 헨리-카리나를 더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1편부터 <캐리비안>과 함께하며 이야기에 리듬감을 부여했던 캡틴 바르보사가 가세하여 비로소 안정감이 생긴다. 


5편의 이야기는 너무 빠르고 한편으로 너무 느리다. 설득력이 없고 몰입력도 부족하다. 잔재미에 충실하지만 어디서 카타르시스를 얻어야 할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강렬한 캐릭터를 선사하는 하비에르 바르뎀과, 그에 대응하여 이야기 전체의 척추 같은 역할을 하는 제프리 러시 두 사람이 보여주는 빌런 대 빌런의 줄다리기가 <캐리비안> 전체 시리즈를 반추하게 만든다. 숨은 공신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캐리비안>의 숨은 주인공은 악당이 되었다가 선인이 되었다가 아빠가 되는 바르보사라고 해도, 아무도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이 시리즈물의 세계가 또 어디로 치달을지 역시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빌런이 없는 <캐리비안>은 상상도 하기 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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