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즐 Jun 04. 2017

진부하고 소중한, 7번째 내가 죽던 날

메멘토 모리, 아모르 파티와 Yolo까지 끼얹어


얼마 전에도 넷플릭스의 SF 영화 <ARC>를 보았지만, 시간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소위 ‘타임루프’ 세계관을 가진 영화들이 쏟아져 나올 만 하다. 가장 유명한 타임루프 영화 중 하나인 <나비 효과>라든지, 조셉 고든 래빗과 브루스 윌리스가 동일인으로 나온 <루퍼>라든지, 몇 가지 규칙만 지킨다면 얼마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남자의  <어바웃 타임>이라든지, 이런 영화가 나오면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떠올리는 고전 <사랑의 블랙홀>이라든지.

빌 머레이의 <사랑의 블랙홀>


조셉 고든 래빗의 <루퍼>

<7번째 내가 죽던 날>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소녀가 친구들과의 만남, 학교, 파티로 이어지는 하이틴 영화의 전형적인 하루를 보내다가 타임루프에 갇혀버리는 이야기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자신은 멀쩡히 살아 있다. 똑같은 어제를 끊임없이 살아가게 된 주인공 ‘사만다’는 거의 미칠 지경이다. 처음에는 데자뷰라고,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그녀는 오늘이 아닌 내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묘한 변주가 있을 뿐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눈을 뜨고 똑같은 말로 자기를 맞이하는 친구들을 본다. 자신이 이미 죽어 “지옥"에 갇힌 건지, 아니면 림보 같은 교착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건지 구분할 수 없으나 확실한 건 그녀에게 도망갈 곳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7번째>가 특별한 영화는 아니다. 타임루프 영화를 가장한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가장한 불교 영화를 가장한, 결국 장르를 구분할 수 있는, 좀 특이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도할 정도로 두드러지고 자칫 관객의 비웃음을 살 정도가 되었다. 배우들도 귀엽고 음악도 좋고 심지어 배경은 굉장히 아름다운데 - 틀림없이 캐나다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미국 북서부 캐스캐디아 지역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다. 다만 사만다가 정말 7번 죽을지 세어보려고 했는데 역시 원작 소설과는 달리 빠른 속도감을 주기 위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 살아나는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사소한 연출은 마음에 든다. 아니, <7번째>가 힘을 얻는 것은 그런 사소한 부분들 덕분이다.



샘을 비롯해 그녀의 친구들은 관객에게 기시감을 주는 대사와 행동을 반복한다. 학교의 여왕 ‘린제이’, 똑똑하고 빈틈없는 ‘알리’, 친구들 사이를 떠다니는 ‘엘로디’와 그녀들의 피해자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 이나 <가십 걸> 등에도 등장할 법한 인물이다. 그러나 원작소설이 있어서인지 그녀들에게 설득력과 개연성을 부여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인다 - 부모님의 다툼을 목격한 후 죄책감을 뒤집어씌울 곳이 필요했던 린제이나, 타임루프 속에서 어떻게든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려 애쓰다가 서서히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아가는 사만다에 대한 묘사 등이다 (여배우 조이 도이치와 할스톤 세이지도 매력적이다). 하루를 특별한 분기점으로 만들려 했던 사만다의 노력은 실패한다. 그저 있는 그대로 순간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자 비로소 그녀의 하루가 바뀐다.



결과적으로 <7번째>는 아름다운 배경, 나쁘지 않은 음악 덕분에 나름대로 한 번쯤 볼 만한 영화가 되었고, 만약 내가 타임루프에 갇힌다면, 이라는 생각도 하게 해 준다. 철없는 나로서는 정말 신날 것 같지만, 분명 어느 순간에는 두려워지리라. 언제 이 타임루프가 끝날지, 내일로 넘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오늘의 죽음으로 막을 내릴지, 인간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그런 불확실성이다. 내가 그런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를 딛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살 수 있을까? 불확실성을 운명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순간을 사랑하라, 운명을 받아들여라, 인생은 유한한 것이니 지금을 즐겨라, 등 <7번째>는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와 아모르 파티와 Yolo(요로...)를 모두 섞어 전달하려고 한다. 부담스럽고 진부하긴 하지만, 정작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니 때때로 이런 영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에게 타임루프를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 따위는 없고, 내일이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이 순간도 찰나에 지나가 버리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빌런의 역사, 캐리비안의 해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