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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Jun 25. 2017

당신이 있어서 좋아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 <헝거게임> 시리즈들은 등을 맞댄 쌍둥이 같아서, 어느 한 편을 보면 반드시 다른 영화까지 줄줄이 보게 된다. 그만큼 제니퍼 로렌스의 매력이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실버라이닝>과 <셰프>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라라랜드>와 <블루 발렌타인>을 연이어 본 후의 라이언 고슬링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실버라이닝> 속 브래들리 쿠퍼만큼은 멋있어 보인다. 영화가 스스로 ‘남친렌즈’ 역할을 한 셈이다. 역시 배우는 연기를 잘 할 때가 제일이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배우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매튜 퀵의 원작 소설도 재미있있고 잘 읽히지만,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가 아닌 팻과 티파니를 상상하기는 힘들 정도다. 남편을 잃고 사랑에 허덕거리는 티파니, 요양소에서 나와 아내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팻 주니어의 빛과 그림자가 있는 그대로 다가온다.



팻과 제니퍼는 모두 인생을 반으로 꾹 접을 수 있는 터닝포인트를 지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분기점에 대응하는 방식은 사뭇 달라 보인다. 팻은 아내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읽고, 거적때기 같은 땀복을 입고서 조깅에 매진하며, 자신이 건전하고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위해 “Excelsior"를 외친다. 반면 티파니는 남편을 잃은 외로움에 그대로 몸을 맡긴다. 회사 내 모든 직원들과 섹스를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잘린다. 형부의 친구인 팻에게 들이대다가 비난을 받자, 오히려 “나는 내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걸 알고, 이런 부분마저 나라고 생각해요”라고 응수한다. 팻은 자신을 완전히 뒤집고 싶어하는 반면 티파니는 자신을 지키고 싶어한다. 




시작부터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이 결국은 사랑에 빠진다는 건 미녀와 야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형적인 러브 스토리지만, <실버라이닝>은 두 사람이 거듭 부딪치는 상황을 무리하지 않고 보여준다. 언제 팻이, 또는 티파니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달을까, 를 전전긍긍하면서 보는 대신 팻과 티파니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광기에 대응하는 모습을 본다. 사실 팻과 티파니가 아니라 주변인물들도 상당히 제정신이 아닌 건 마찬가지여서, 과연 팻의 형이 팻에 대해 평가하고 티파니의 언니가 티파니를 평가하듯이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아해진다. 암만 봐도 스포츠 도박에 빠져 온갖 미신을 신봉하는 팻의 아버지 역시 치료가 필요할 것 같고, 경기장의 훌리건들은 당연히 제정신이 아니다. 어차피 사람들은 어떤 면으로든 뒤틀린 구석을 갖고 있고, 과연 그 뒤틀린 면을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뒤틀린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티파니와, 뒤틀린 부분을 개선하고 싶어하는 팻. 둘은 서로 다른 듯 닮아 있고, 그래서 서로에게 부끄러움 없이,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다. 그런 사람을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두 사람은 그런 면에서 행운아이자 운명의 단짝이다. 티파니가 있음으로 하여 아내와의 관계를 냉정하게 볼 수 있었던 팻과, 팻이 있음으로 하여 남편과의 과거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티파니의 춤 실력은 그나마 참고 봐 줄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댄스 경연대회에 나온 두 사람이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와 순간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티파니와 팻처럼 극적인 만남은 아닐지언정 누구에게나 꾸질한 내 인생에도 한줄기 빛이, 라고 감사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내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고, 그 사람이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을 한없이 하찮은 존재로 보게 된다. 곰처럼 두꺼운 거죽 대신 얇은 피부를 가진 미물인지라, 타인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 민감함과 섬약함이야말로 인간을 ‘Excelsior’라든지 운명이라든지 필멸과 불멸 같은 존재론적인, 동시에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로부터 떨어져 일상을 꾸릴 수 있게 도와주는지도 모른다 -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사랑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어딘가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묘하게 끌리는 모양이며, 그래서 이토록 우스꽝스러운 연애를 아등바등 애타게 하는 모양이다. 결국엔 나와 같은 티파니가 팻 같은 누군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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