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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Jun 12. 2017

인생의 회전목마, 로스트 인 파리

기쁨과 슬픔으로 빚어진 작은 우주


놀이동산에서 빠져서는 안 될 세 가지를 꼽으라면 롤러코스터, 솜사탕(혹은 아이스크림)과 회전목마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회전목마가 없는 놀이동산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영어로는 Merry-go-round, 밀고 당기기, 상황의 반전, 이라는 뜻에 걸맞게 그 앙증맞고 동그란 기계에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모두 들어 있다. 슬프고 기쁜 것, 지나치게 예쁘고 또 애잔한 것, 가질 수 있었던 것과 이제는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는 것들 ㅡ 하얀 조랑말과 분홍 유니콘, 바퀴가 큰 마차, 롤리팝 같은 기둥, 사각지대를 남겨두지 않는 거울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애잔하고 쓸쓸하고 또 행복해진다. 나는 한밤중의 회전목마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음악이 모든 블로그의 배경음(aka 브금)으로 사용되던 때도 있었다. 히사시 조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Howl's Moving Castle>을 위해 만든 음악인데 그 제목에 어울리게 옛날 동화처럼 과장되어 있고 매무새가 얼기설기한, 그만큼 반짝거리는 음악이자 영화였다.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이 계속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영화들 ㅡ <페어리>, <룸바>, 얼마 전의 <로스트 인 파리>도 비슷한 질감의 영화다. 한 번 볼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오히려 그 어설픔이나 과장된 부분들 덕분에 두 번, 세 번, 라디오를 듣듯 보게 된다. 처음 <페어리>를 보았을 때는 음악이나 색감의 사용 같은 것이 충격적일 정도였다. <로스트 인 파리>를 보는 지금, 이제 신선함은 잃었을지언정 점차 그들과 정이 들어 어느 것이 영화의 결점이고 또 장점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로스트 인 파리>는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이 (여느 때처럼 함께)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영화다. 분위기도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틸드 이모로부터 "사람들이 나를 양로원으로 보내려 해"라는 S.O.S 요청 편지를 받고 프랑스 파리로 날아간 피오나(피오나 고든). 그러나 이모는 아파트에서 사라진 후 연락두절이 되어버렸고, 캐나다에서 메고 온 배낭도 잃어버린 데다가, 이상한 노숙자 돔(도미니크 아벨)만이 자기를 따라다닌다. 과연 이모는 어디 있을까, 노란 스웨터를 입고 있는 이 남자는 누굴까, 이것이 사랑일까, 이것이 인생일까. 단순하고 성긴 구성과 짧은 러닝타임을 자랑하며, 영화는 피오나와 돔의 인생이 얽혀드는 과정을 묘사한다. <페어리>나 <룸바>와 마찬가지로 음악과 춤, 선명한 색감이 흥취를 돋움은 물론이다.

 


피오나와 돔의 여정은 해피엔딩을 예고하는 동화처럼, 헛소동으로 가득찬 셰익스피어의 희극들처럼 발랄하게 흘러간다. 빨간 배낭, 노란 스웨터 같은 소품의 색상이 두드러지며 에펠탑과 세느 강은 그 자체로 이미 마력적이다. 피오나와 돔, 마틸드와 노르만의 춤을 보고 있자면 같이 어깨를 움직이며 발을 구르고 싶을 정도다. 어차피 우리가 이 영화를 볼 때 기대하는 것은 촘촘한 서사도 긴장감도 심지어 어느 정도의 개연성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대부분의 주크박스 뮤지컬보다 훨씬 몰입감이 있고, 또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골치를 썩히며 "이게 왜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거지", "이게 대체 뭐가 말이 된다는 거지" 식의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롤러코스터를 탄 게 아니라, 밤낮으로 반짝이며 제자리를 맴맴 돌 뿐인 회전목마에 타고 있으니까.



만약 영화의 목적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로스트 인 파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그 목적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단순하지만 함의가 풍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어려울 것도 없고 자극적일 것도 없다. 채소를 넣고 푹푹 끓인 시골식 스튜처럼 이미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삶과 죽음이, 사랑과 이별이, 행복과 슬픔이, 분노와 용서가, 아름답고 못난 것이 이 작은 우주 안에 모두 있다. 영화를 다 보면 저절로 이 말이 튀어나온다, "C'est la vie, ou Quel manè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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