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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Jun 25. 2017

깊어지는 마음,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시간이 뺏아가고 또 가져다주는 것


웨스 앤더슨 감독의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만큼 잭팟을 터뜨린 영화는 아니다 (아직도 왜, 굳이, 하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이른바 “메가히트”를 치면서 웨스 앤더슨의 “최고작”이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바틀 로켓>과 <로열 테넌바움>, <문라이즈 킹덤>,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등과 마찬가지로 어여쁜 색채로 서글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제나 깊은 콘트라스트의 색감을 사용하고, 사소한 소품에 집중하며, 별 것 아닌 말장난과 보기 드문 캐릭터를 활용한다. 조숙하고 어설픈 어른아이, 또는 아이어른의 생활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남녀간 줄다리기를 변주했던 에릭 로메르처럼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는 고집쟁이다 (다만 고집도 이 정도면 병이다).



에릭 로메르나 우디 앨런의 이야기만큼 “범용성”이 떨어지는 탓인지,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지겨울 때도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냐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문라이즈 킹덤> 같은 영화를 생각하면 웨스 앤더슨을 미워할 수 없고,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전자가 브루스 윌리스를 귀염둥이로 만들었다면 후자는 윌렘 데포를 깜찍하게 만들어버린다. 비록 <다즐링 주식회사>보다 열 배 정도 더 지겹고 그 주인공은 <로열 테넌바움>의 인물들보다 훨씬 비호감이지만 -  주인공' 스티브 지소(빌 머레이)’는 웨스 앤더슨 주인공 중에서도 유독 개차반이라, 암만 아이어른의 성장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해도 이 정도로 되먹지 못한 인간이라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스티브 지소>는 끝나기 전 5분 동안 할 말을 다 해버리는 영화이며, 그 마지막의 뭉클함 덕분에 모든 지겨움을 감안하게 되는, 마지막 4악장을 기다리며 조용히 달려가는 교향곡 같은 영화다.



스티브 지소 선장은 한때 해양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이름을 날리던 탐험가다. 어벤저스에 버금가는 팀, 재력, 명성, 자기 이름을 딴 보이스카우트가 있었다. 그러나 썰물처럼 물이 빠지듯 인기도 사람도 달아나고, 가장 친한 친구는 표범상어에게 물려 죽는다. 그러나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기 때문에 과연 친구가 표범상어에게 뜯겨 죽은 것이 맞느냐, 라는 괘씸한 질문에 대답할 증거조차 없다. 여자에게 추태를 부리는 바람둥이, 책임의식은 손톱만큼도 없는 허세왕, 세상에 나 하나 돋보이면 된다는 꼰대 스티브에게 남은 것은 아들이라며 찾아온 한 청년 ‘네드(오웬 윌슨)’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팀원들과, 표범상어에 대한 복수심이다.




모비 딕을 쫓아가는 허먼 멜빌의 박진감과는 달리, 영화는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방식으로 스티브 지소 일행을 담아낸다. 표범상어를 쫓는 그들의 모습은 그 나름대로 시끌벅적하긴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구두장이 요정들만큼 아기자기하다. 사우나와 음향편집실을 갖춘 탐사선도 귀엽기 짝이 없다. 해적들의 습격을 받거나 탐사선의 브레인을 담당하는 부인 엘레노어(안젤리카 휴스턴)가 떠나버리거나 “굴러온 돌” 네드와 “박힌 돌” 클라우스 간 신경전이 펼쳐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표범상어를 찾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2차원의 회화 같은 느낌을 유지한다.



어쩌면 이런 지루함은 웨스 앤더슨이 가장 사랑하는 일상성의 정서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런 평탄한 일상이, 사람들의 외로움을 돋보이게 하고 관객이 아직 미성숙한 등장인물들을 멀찍이서 관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드라마에 정서적으로 들러붙는 대신, 조금 떨어져서 온갖 인간군상을 관찰한다 - 바닷속 생물들을 관찰하는 스티브 지소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었다. 눈앞에서 친구를 잃었고, 명성과 돈을 잃었고, 아내를 잃기 직전이고, 신망은 진즉에 잃어버린지 오래다. 다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또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내일도 아마 뭔가를 잃어버릴 것 같다. 영화가 보여주는 삶은 뭔가를 잃어버리는 과정의 연속이지만, 놀랍게도 스티브 지소는 탈진할지언정 포기하지는 않는다. 끝까지 표범상어를 쫓아가 찾아내는 스티브 지소의 곁에서 엘레노어가 말한다. “아름다워.”



눈에 보이는 것들이 계속해 떨어져나갈지언정,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에만 집착한다면 스티브 지소는 물론이고 세상 사람 모두가 멀쩡한 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린 시절은 멀어지고, 열정은 옅어지고, 순수함은 상처입는다. 그러나 결코 그 결락의 자리를 원래대로 메울 수는 없을지언정 - 잃어버린 친구의 자리를 새로운 친구로 메울 수 있을까? - 단지 뭔가를 위한 자리가 또 생겨난다. 세월의 힘으로 인간의 마음은 넓어지고 또 깊어진다. 배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비로소 네드와 스티브는 아들과 아버지가 되고, 네드와 클라우스는 친구가 되고, 스티브와 엘레노어는 (새삼) 부부가 된다. 스티브는 오래된 친구(마이클 갬본)과 새로운 동지(매튜 그레이 구블러)의 힘을 재확인하며, 네드는 엄마의 유산을 잃었을지언정 새로운 둥지를 얻는다.



스티브 지소 원정대의 상징인 빨간 모자와 ‘Z’가 새겨진 유니폼(진심으로 갖고 싶다)을 장착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 때, 마치 비틀즈가 다시 모여드는 듯 애틋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희구하는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적절한 방식으로 보상받는다. 스티브 지소와 함께 아이어른을 대변하는, 웨스 앤더슨 영화의 상징적 인물인 클라우스는 아버지처럼 따르던 지소를 잃어버리는 대신, 네드를 일원으로 새로 얻는다. 바닷가를 옆에 끼고 걸어가는 스티브들이 엄청나게 부러워진다. 그들은 아름다운 표범상어를 함께 지켜보았고, 그 시간만큼은 누군가 또 죽거나 떠나간다 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백 분 동안의 지겨움을 뒤로 하고 얻은 십 분의 뭉클함이 어디로 사라지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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