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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Jun 29. 2017

떳떳한 순정, 박열

어리석고 빛나는 사랑에 대하여

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절대 촘촘한 영화는 아니다. 그의 전작이 그랬듯 대사도 연출도 미장센과 음악도 다 어딘가 허술하고 촌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 <왕의 남자>는 소재의 독특함으로, <사도>는 베테랑 배우의 분발로 살아남았다. 흑백으로 촬영된 <동주>는 배우의 역진과 소재의 강렬함에 더하여, 그 투박한 연출이 흑백필름의 질감과 잘 맞아떨어져 여운을 남길 수 있었던 수작이었다. 그러나 <라디오 스타>는 한마디로, 망했고, <님은 먼곳에>는 한마디로, 완전 망했다. <박열>은 그 어디쯤에 있다 - <동주>와 <라디오 스타> 그 어디쯤에서, 촌스러움과 강렬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이준익 감독이 스토리텔링, 또는 내러티브에 강한 감독이라는 것이다. 어색한 군더더기 대사가 넘쳐날지언정, 대체 저기서 왜 코미디 요소를 집어넣었을까 한숨을 쉬게 만들지언정, 배우들이 “나 지금 연기하고 있어”라고 온몸으로 외치며 몰입을 방해하는 것을 걸러내지 못할지언정, 관객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그는 대단한 감독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장센을 만들어도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감독도 있고, 엄청나게 쫄깃한 대사를 보여주지만 설득력 있는 결말까지 달려가지 못하는 감독도 있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든 관객을 쥐고 가는, 세련되지 못한 이야기꾼이다. 영화관을 나올 때 관객이 그 결말을 생각하며 묵묵히 재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박열>도 전작과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일본 황태자 암살 미수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던 아나키스트 청년 박열과 그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윤동주만큼 유명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인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실화 및 실존인물에 기반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덕분에 허술함이 묻힐 때도 있고 오히려 두드러질 때도 있지만, 실제 인물이든 아니든 이제훈이 연기하는 영화 속 ‘박열’이 불령사 아나키스트 조직을 만들기 전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불령사에서 어떤 행동을 주도했는지, 가네코 후미코를 만난 후 어떤 행동을 했는지, 조선인 대학살을 덮기 위한 거짓 재판의 주인공이 되면서 왜 유죄를 인정하고 사형대로 달려갈 것을 결심했는지 설득력있게 보여주지 못한다. 어설픈 일본어도 실소하게 하는 코미디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인물이 입체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더불어 시도때도없이 발칵 들고 일어나는 불령사의 친구들, 뜬금없이 등장해 “당신은 그저 유명해지고 싶은 게 아닌가?”. “실제로 당신이 무엇을 했나?”, “왜 대학살을 덮으려는 일제의 뜻대로 움직여 죄를 인정하는가?”라는, 관객이 정말 그 답을 듣고 싶은 질문을 던지다가 금방 수그러드는 기자 같은 등장인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전우애, 순정, 애정, 그 어떤 이름으로든 얽혀 있는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의 절절한 사랑 덕분이다. 가난하게 태어나 비참하게 살아온 후미코와 박열은 하나의 이념 아래 뭉친다. 순진하고 어리석으며 위험한 구석이 있는 이념이자 이상이지만, 젊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과 동시애 마땅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 이념을 지키기 위해 법정에 서고, 저지르지 않은 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한다. 그들에게 이념과 사랑은 한 몸이다.



비록 당신이 나와 함께 있지 않지만 동지로써 뭉친 우리의 서약을 지키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박열의 목소리와, 그런 박열의 단점과 과오마저 사랑하기에 당신을 혼자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가네코의 응답은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 있고, 감동적이며,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틀리지 않다는 신념이 있다. 이 신념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있다. 계급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비천한 개 취급을 받을지언정,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새로운 세계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 같은 의지를 품고 있기에 지켜야 할 서로가 있다. 끝까지 서로에게 떳떳하며 세상 모든 이에게 떳떳한 두 사람을 보며, 그리고 실제로 두 사람이 남긴 한 장의 초상사진을 보며 마음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라는 시대적 죄책감을 느끼기 전에, 나도 저런 사랑과 저런 신념으로 저런 누군가를 만나 함께 하고 싶다는 순정이 차오른다. 이념이든 사람이든 무언가를 순결한 마음으로, 순도 100퍼센트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만큼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어리석음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역사의 인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은 지치고 순정은 시험받으며 믿음은 길목에 서기 마련이다. 그러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뜨거워서 슬프고 아름다워서 가여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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