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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Feb 20. 2019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

강하고 아름답고 잔인하고 똑똑한 영화 속 여인들


<알리타 : 배틀앤젤>을 보았다. <총몽>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았지만 <매드맥스>라든지 <매트릭스>라든지 <퍼시픽 림>(..)이라든지 두루두루 메카닉 및 사이버펑크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과연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액션 센스가 있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보고 스토리(와 연기력)가 거의 유아동용 수준임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때와는 달리, 칼부림이라든지 모터볼이라든지 여러 장면에서의 호쾌상쾌한 액션에 몰두해서 보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모든 건 알리타 덕분이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가슴을 찢어 자기 심장을 꺼내주는 박력, (유사)아버지에게 반항하여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들을 사냥하기 시작하는 활동력, 무엇보다 달이든 화성이든 공중도시든 지하도시든 우주 어디 벌판에 던져놓아도 살아남을 것 같은(그래서 아버지가 딸더러 "죽지 않게 조심해라"가 아니라 "아무도 죽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며 당부하는) 전투력이 <알리타:배틀엔젤>과 그 주인공을 너무나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알리타의 전투 후 닥터 이도는 알리타에게 "아무도 죽이지 말고 기다려"라고 말하게 된다


백번 인정하는데 나는 이런 식으로 쿨하고 터프하고 강한, 상상초월의 수준으로 강한 여성 캐릭터를 정말 좋아한다. 엄청나게 좋아한다. 강하고 아름답고 총명하고 무자비한 소녀를 좋아한다. 나는 언제나 예쁘고 싶었고, 아름답고 싶었다. 격기도든 공수도든 검도든 배우고 싶었다. 총명하고 강하고 터프하고 공정하며 냉혹한 사람, 거의 <인크레더블> 수준의 정복불가능한 무적자가 되고 싶었다. 몸이 약할 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거의 팔랑팔랑한 투명종이 수준인 나의 마음이 이런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으로 발현되는 듯하다. 사실 예전에 나는 다시 태어나면 늘 남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이런 캐릭터들을 볼 때에는 또 이렇게 철의 여왕, 단단한 금속의 여왕 같은 존재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뺏아간 영화 속 여성 캐릭터 TOP 10을 꼽아보았다. 그들은 1) 여성이고 2) 여성임을 숨기지도 않고 또 부각시키지도 않으며 3) 아름답고 똑똑하고 멋지고  4) 엄청나게, 말도 못하게, 어이없게 강하고 5) 자비, 어줍짢은 용서 및 인생에 대한 오락가락 고민이 없다.




10위 <마녀 Part1>, 자윤


여기서 자윤의 연기는 거의 킹덤 급으로 어색했지만 액션은 훌륭했다


박훈정 감독의 <마녀> 영화 자체에 대해서 나는 형편없는 별점을 주었다. 차라리 <브이아이피>가 더 재미있었고 연기력도 훨씬 나았다. 박훈정 감독이 퇴보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으며 <마녀>의 어설픈 졸업작품 같은 연기를 참기 힘들었다. 스토리도 허섭했고 모든 게 너무 작위적이었다. 그러나 캐릭터의 그 파워로만 볼때, <악녀>의 김옥빈이라든지 <언니>의 이시영이라든지 <극한직업>의 이하늬(좀 다른가)라든지 등등의 캐릭터들에 비해 훨씬 강력하고 무자비한 캐릭터가 자윤이므로, 10위에 넣어본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존재가 자신을 멋대로 만들어내고 폐기하려 드는 창조자들에 복수를 감행한다, 는 줄거리는 너무 많이 봤다. 주연배우의 연기도 심각하게 어색했다(조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연기지도가 전혀 붙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에서는 새로웠기 때문에, 배우의 몸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찍은 것 같은 액션 연출이 훌륭해서 <마녀 Part1>의 자윤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다. Part2가 나올까 봐 두렵긴 하지만.





9위<원티드>, 폭스


안젤리나 졸리가 선보이는, 모든 자연법칙을 무시하는 터프함


안젤리나 졸리의 액션연기들(<툼레이더>, <미스터 앤 미시즈 스미스>, <솔트> 등)을 통틀어 <원티드>에서의 액션이 가장 스타일리시하다. 굴절하는 총알 등 자연법칙을 무시하는 액션의 전시를 의도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안젤리나 졸리가 맡은 역할 '폭스'와 그녀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되었던 것 같다(덕분에 주인공이 제임스 맥어보이라는 사실은 늘 잊어버린다). 기차 위로 뛰어오르는 폭스, 터널을 지나갈 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몸을 꺾어버리는 폭스, 회복실에 몸을 담갔다 일어나는 폭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파워풀한 전사 자체였다.




8위 <밀레니엄>, 리즈베트 살란데르 : 루니 마라 (& 클레어 포이)


천재 해커이자 자경단, 리즈베트 살란데르 (루니 마라)
리즈베트와 그녀만큼 강한 쌍둥이 카밀라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 소설도 재미있지만, 데이비드 핀처가 아주 훌륭한 개작물을 만들어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스웨덴 원작 영화는 암만  역시 TV영화스러움이 강하고, 최근 클레어 포이의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액션 스릴러로 장르를 조금 갈아탔다). 데이비드 핀처의 어둡고 끈적끈적한 <밀레니엄>에서 루니 마라가 연기한 천재 해커 리즈베트 살란데르란 캐릭터는 종잡을 수 없는 매력덩어리다. 스티그 라르손(뿐만 아니라 그의 작고 후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쓴 후임까지)이 책 여기저기서 극찬하는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진 다른 여성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리즈베트 살란데르는 깡마른 몸에 용 문신을 한 고딕 소녀다. 그러나 그녀는 위험한 자경단이고 국가의 법 따위 자기 편리에 따라 무시하는 불법 해커이면서도 자신의 정의감과 공정성에 벗어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칼 같은 인물이다. 덕분에 그녀는 사이코패스인 자기 아버지를 포함해 수많은 범죄자들과 겁없이 맞서 싸우고, 사경을 헤매다가도 끝내 살아난다. 그녀의 쌍둥이 자매인 카밀라 살란데르(<거미줄에 걸린 소녀>에 등장한다) 역시 리즈베트와 비슷하게 강하고 거침없고 똑똑하고 아름다워서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거미줄에 걸린 소녀> 자체의 스토리 힘은 빠졌을지언정 클레어 포이가 분한 리즈베트의 격투력은 한층 상승한 듯.




7위<분노의 질주> 시리즈, 레티 : 미셸 로드리게즈


간만에 드레스업한 레티

<분노의 질주>에서 샤를리즈 테론을 만나는 즐거움도 컸지만 역시 시리즈의 멋짐은 미셸 로드리게즈의 몫. 미셸 로드리게즈는 다른 영화들에서도 이렇게 터프하고 거침없는 역할을 도맡는 편인데, 특히 <분노의 질주>에서는 자동차 액션이라는 한큐가 더해지면서 레티의 강한 매력이 더 빛난 듯하다. 단지 남자 출연자의 동반자가 아니라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물로서 런던 택시기사분들 뺨때리는 운전실력과 맨투맨 격투력을 겸비한 레티인데, 그녀가 한번씩 드레스업하고 등장할 때에도 정말 멋지다.




6위 <여왕 마고>, 마고 : 이자벨 아자니



이자벨 아자니는 곧 마고 공주였다


10위부터 7위까지의 인물들은 주로 나에게 인상깊은 격투신이나 말 그대로 피지컬한 전투력으로 감명을 주었다면 6위부터는 본격적인 동경의 시작이다. 검은 머리의 이자벨 아자니는 <여왕 마고>에서 누구도 아닌 마고 공주 그 자체였다. 모든 권력을 손에 쥔 것 같은 공주지만 구교와 신교의 갈등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을 한 마고. 결국 종교분쟁이 참극을 부르고 학살이 일어난다. 그녀 역시 피투성이가 되지만, 오히려 피가 묻을수록 공주는 강해진다. 그녀는 어머니의 딸이자 오빠의 동생이 아니라 한 여자로서 온전하게 살아남는다. 단지 선하고 어여쁘며 누군가에게 간택되는 동화 속 공주가 아니라, 모든 것을 동원해 분투하는 마고의 모습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자벨 아자니의 카미유 클로델과 더불어, 이자벨 아자니의 최고 역할이라고 꼽고 싶기도 한 캐릭터.





5위<헝거게임>, 캣니스 애버딘 : 제니퍼 로렌스


사냥꾼에서 저항군이 된 소녀 캣니스 애버딘



제니퍼 로렌스를 또렷하게 각인시킨 <헝거게임> 시리즈. 비슷한 스토리는 많다 - 일례로 <다이버전트>라든지 유사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있지만, <헝거게임> 3부작(마지막 3부는 2개로 쪼개졌으니 4부작이라고 해야 할 수도)은 그 특유의 서글픔과 터프함이 있다. 캣니스는 스스로 영웅이 되고 싶어 영웅이 된 건 아니다. 강제로 혁명의 상징이 되어 전쟁에 휘말린 신세지만, 자신의 엄격한 잣대를 굽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다. 


중앙정부 캐피톨에서 가장 먼 12구역의  소녀 캣니스 애버딘은 그저 동생을 지키기 위해 '헝거게임'이라는 살상 게임에 참가하고, 누구도 그녀의 생존을 기대하지 않는다. 각 구역마다 참가자를 선정하고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여야 하는 게임을 거치며 숲속을 돌아다니는 사냥꾼 소녀에 불과했던 캣니스는 날카롭게 벼려지고 강해진다. 남을 먼저 해치지도 않지만 공격을 받아넘기지도 않는다. 캣니스가 보여주는 쿨함 때문인지 현명함 때문인지 모든 구역의 사람들이 캣니스에게 환호하기 시작하며 그녀는 독재에 저항하는 반군의 기수가 된다. 제니퍼 로렌스가 아닌 캣니스 애버딘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무뚝뚝하지만 사려깊고 재빠른 전사의 역할을 잘 소화했다. 꼭 그녀가 반군의 상징이 되어서가 아니라, 캐피톨 대통령 앞에서도 할 말은 빠지지 않고 하는 그녀인지라 멋있는 것이다.




4위 <토르:라그나로크>, 헬라 & 발퀴레 : 케이트 블란쳇 & 테사 톰슨


MCU 최강의 빌런 헬라
헬라의 공격을 피하고 살아남은 발퀴레


이전 <토르:천둥의 신>과 <토르:다크월드> 시리즈와는 상당히 다른 색채를 보여줬던 <토르:라그나로크>. 덕분에 토르 원작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많이 갈렸지만, 세 편 중 가장 유쾌하고 흥미로운 작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토르, 로키 형제와 헐크가 찰떡궁합으로 개그를 자랑하는 가운데, 토르 시리즈다운(어쨌든 지구를 초월한 탈인간급 이야기이므로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 건 사실이다) 박력과 에너지는 두 여성인물이 담당한다. 초강력 빌런 헬라(케이트 블란쳇)와 토르의 조력자로 돌어서는 발퀴레(테사 톰슨)가 시선을 강탈한다. 헬라는 마블 시리즈에서도 전무후무한 힘을 가진 빌런이다. 만약 헬라가 살아있었다면 타노스가 감히 손가락 까딱질로 우주의 반을 죽여버리지는 못했으리라는 게 학계의 정설. 케이트 블란쳇이 우아하고도 매력넘치는 표정과 몸짓으로 헬라를 연기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스가르드 군대와 일당백으로 맞서싸우는 헬라에게 발퀴레 군단을 모두 죽여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을 성 싶다. 게다가 어쩌면 토르 및 로키라는 두 오딘슨(오딘의 아들들)과 맞서기 때문에 빌런일 뿐, 사실은 본인의 정당한 권위를 주장하는 듯하다. 헬라는 오딘의 첫째 딸이고, 오딘과 함께 아스가르드의 세력을 확장했으며, 토르 플러스 로키보다 강하니까! 오죽했으면 헬라 때문에 망치가 부서진 토르가 결국 아스가르드 전체를 멸망시켜 헬라를 생매장했을까.


토르 시리즈 최고의 명장면


이런 헬라에 맞서는 토르, 로키, 헐크에게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존재는 살아남은 발퀴레(참고로 <작전명 발키리>의 그 발키리)다. 헬라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고 지금은 그랜드 마스터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술독에 빠져 지내는 상태지만, 결국 헬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시 발퀴레로 돌아간다. 우주선에서 대포를 조종하는 테사 톰슨이나, 맨몸으로 다른 우주선에 뛰어드는 테사 톰슨은 케이트 블란쳇의 헬라에 뒤지지 않는 힘을 보여준다. 나는 헬라와 발퀴레 군단의 전투 장면을 <라그나로크>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을 것이다.




3위 <닥터 스트레인지>, 소서러 수프림 : 틸다 스윈튼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눈을 압도했던 것은 가히 압도적인 비주얼뿐만 아니라((프랙탈을 구현한 듯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음속 환영을 보여주는 장면은 다시 봐도 대단하다), 두 강력한 주축인물의 카리스마 대결이었다. 덴마크 국민배우인 매즈 미켈슨이 악역을 맡은 가운데, 닥터 스트레인지를 이끌면서 세계를 수호하는 '소서러 수프림'은 틸다 스윈튼이 맡았다. 백인이 캐릭터를 맡았다며 화이트 워싱 논란이 있었으나, 여성 배우가 소서러 수프림을 연기한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영화에서도 막 카마르 타지를 찾아온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수염을 기른 동양인 남자인 마스터 하미르를 소서러 수프림으로 착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프로토타입에 대한 재미있는 풍자다).



소서러 수프림은 MCU에서 가장 우월한 마법사로서 여러 차원을 넘나들며 세계를 지키는 존재다. 소서러 수프림을 연기하는 틸다 스윈튼이 매즈 미켈슨을 상대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눈을 빼앗기게 된다. 그녀는 스티븐을 에베레스트 설산으로 보내버릴 만큼 잔인하기도 하고, 또 그런 스티븐을 마스터 수준에까지 끌어올릴 만큼 현명하기도 하다. 사실 나는 틸다 스윈튼의 거의 모든 캐릭터(<옥자> 빼고 전부라고 해도 될듯)를 좋아한다. <콘스탄틴>의 가브리엘도 강하고 아름답고 잔인한 캐릭터인데, 가브리엘은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무의미한 존재라는 점에서 제외하였다(내 이름과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고).




2위 <알리타:배틀엔젤>, 알리타 : 로사 살라자르


큰 눈의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


고철로 버려졌다가 닥터 이도에게 발견되어 새 인생을 얻은 사이보그 소녀 알리타. 처음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던 소녀였지만 점차 자신이 불세출의 전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단지 현상금 사냥꾼일 뿐만 아니라 공중도시의 지배자에게 도전하고 모터볼 챔피언을 노리는 반항자이기도 하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공들였다는 액션신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호쾌하다. 작은 소녀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가 무시무시하며, 그녀는 중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여기저기로 날라다니고 적들을 두동강낸다(메탈 기어 솔리드의 라이덴이 생각났다, 영화를 보는 동안). 하지만 역시 알리타의 진짜 매력은 "누구보다도 사람같은" 마음가짐이다. 그녀는 지나치게 고민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과거를 떠올리면 받아들이고 자신이 지금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 심장을 꺼내줄 정도의 순수한 터프함이 있다. 알리타 덕분에 후속편이 몹시 기대된다. 몇 년 걸리진 않겠지..?



모두가 그녀를 죽이려 달려들 때에도 안심할 수 있었다, 알리타니까





1위 <레이디 맥베스>, 캐서린 레스터 부인 : 플로렌스 퓨


소녀에서 여자로, 플로렌스 퓨의 '캐서린 레스터 부인'


시골 상인의 집에 팔려가듯 시집을 갔다가 사랑도 존중도 없는 지루한 생활에 질린 나머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시작하는, 그래서 말 그대로 주변 사람들의 운명을 뒤집어버리는 “레이디 맥베스” 캐서린 레스터. 플로렌스 퓨는 <더 폴링>과 이 영화 두 편만으로 나에게 틸다 스윈튼 같은 배우가 되어버렸다(플로렌스 퓨는 <파이팅 위드 마이 패밀리>에서는 격투기 선수가 되고 싶은 딸(무려 드웨인 존슨의 딸인 듯하다)로 출연할 예정이고 <작은 아씨들>에서는 집안 식구들 중 누구도 콘트롤하기 힘든 막내 에이미로 출연하는데, 무척 기다리고 있다). <레이디 맥베스>에서 플로렌스 퓨는 그녀가 인터뷰했듯 "영화가 시작할 때는 소녀지만 끝날 때는 여성으로서의" 캐서린을 체현한다. 플로렌스 퓨가 아닌 캐서린 레스터는 상상 불가다.


캐서린 레스터는 마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나 <테레즈 라캥>의 여주인공들처럼 육체적으로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정신적으로는 자신을 경멸하는 남편을 견디지 못하지만, 거기에서 한 수 더 나간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하인 세바스찬과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만족감을 찾아나간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아름답고 강인한 만큼 잔인하고 공정한 여인이기 때문에  "너와 살아서 헤어질 생각은 없어, 우리는 무덤까지 함께 가는 거야"라고 다짐을 받았던 캐서린은 세바스찬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자신은 세바스찬과 달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손에 피든 무엇이든 묻힐 수 있는데 세바스찬은 무력하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일 뿐이며 끝내 자신을 배신하기까지 한다. 캐서린은 그런 세바스찬을 좌시하지 않고 징벌하며, 그가 죽도록 내버려둔다. 참으로 박진감 넘치는 캐릭터다.



이제 <레이디 맥베스>는 몇 안 되는 대사를 달달 외우는 영화가 되었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는 영화가 되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알리타로 태어나겠지만, 지금 당장에는 캐서린 레스터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 고 오늘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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