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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Feb 11. 2019

이것보다 나은 것을 바랐다

실망스러운 행보, 넷플릭스 <킹덤>

넷플릭스 <킹덤>에 대해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해외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그저 마케팅의 일부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사가 요란하다. <킹덤>의 사전홍보도 굉장히 요란했다. 넷플릭스 제작 한국드라마, 한국 최초의 '좀비' 역사극 드라마(최초의 콘텐츠는 아니었다, 어쨌든 얼마 전에 <창궐>도 나오고 <믈괴>도 나왔으니까), 제작비 ㅇㅇ억 투자,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 집필(<신의 나라>라는 원작이 있다고 한다, 아직 원작은 접하지 못했다), 헐리우드 스타 배두나와 요새 가장 핫한 주지훈의 만남 등등. 그러니까 한마디로 <킹덤>은 이런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음모론과 종말론의 득세

어린 중전과 젊은 세자의 혈투

피와 뼈의 암투, 잔인한 짐승들의 세상

이것은 좀비물인가 역사극인가 스릴러인가 하드고어인가

지금까지 이런 드라마는 없었다, 킹덤 (두둥)



요약하자면 이런 식 아닐까? 그리고 <킹덤>의 예고편은 정말 잘 빠졌다. 정말 그런 느낌일 것 같았다. 의녀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좀비들(인간탑을 연상시킨다)의 비주얼은 강력했고, 주지훈의 눈빛도 좋았다. 아름다운 의상과 배경 등 기본적으로 역사극에 기대하게 되는 미장센도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이고, 미장센이 엄청 뛰어나든지 역사극이든지 웃기는 시트콤이든지, 세 가지 경우가 아니면 조금도 몰입하지 못한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한국드라마는 <다모>였고 거기서 한국드라마의 역사는 끝났다. 그러다가 <시그널>을 정말 몹시 재미있게 봤고, <비밀의 숲>도 결말에 가서 조금 흐지부지해졌을지언정 꽤 몰두해서 봤다. 하드보일드하고 건조하거나 박력이 넘치거나 스토리가 탄탄하거나 전부이거나, 그런 느낌을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킹덤>에 대해서도 기대를 했다. 확실히 내가 기억하는 한 이런 드라마는 없었기 때문에 - 피칠갑의 좀비들이 뛰어다니며 목이 댕강댕강 잘리는(..) 느낌의 드라마는 없었기 때문에,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루만에 6회를 다 봤다.


이런 비주얼만 볼 수 있기를 소망했다



새롭긴 하지만 숨막히는 연기력


숨막히는 연기력의 대표주자


하지만 누구라고 나을 것 없다


새롭긴 했다. 적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우르르 뛰어다니는 건 처음 봤다. 의상도 예뻤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당장에 드는 느낌은 드라마가 너무 성기다는 것이었다. 스토리가 전개되는 데 매끄럽지 않았고, 이미 작가가 설정해 둔 구도와 프레임 안에서 예상가능한 대사를 하는 등장인물들은 입체적이지 못했다. 운명론과 우연의 반복이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인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했다. 중전(김혜준)과 의녀(배두나)를 비롯해서 하나같이 어색했기 때문에 누가누가 더 어색하나 자웅을 겨룬다는 느낌이었다. 대사를 하는 톤이나 어조가 매끄럽지 못한 배우도 있고, 시종일관 복식호흡을 하며 무거운 대사를 내뱉는 배우도 있고, 책을 읽는 건지 웃기자는 건지 구분하지 못할 배우도 있다. 김혜준 배우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류승룡의 "시즌2에 포텐이 터질 것이다"라는 인터뷰로 극복하지 못할 수준이었다(근데 류승룡의 연기마저 어색했다). 배두나 배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이건 본인의 인터뷰와 달리 사극 대사의 톤&매너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매 대사가 조마조마했고, 발음도 잘 들리지 않았다. 역할에 녹아들지 못한 것 같았다. 인터뷰에서는 본인도 연기가 우스웠다고 말했지만, 나쁜 연기에 대해 쿨하게 넘어가는 태도는 연기에 대한 대가를 받는 프로페셔널의 자세 같지는 않았고 무척 실망했다. 시청자를 숨막히게 하는 배우는 좋은 배우가 아니다... 


내가 너무 까다롭게 보는 것인가 싶어서 배우들의 연기 때문에 두 번째에는 더빙판과 한국판을 섞어 보았다. 의상 때문인지 성우들이 훌륭한 건지 중국어 더빙은 정말 자연스러웠다. 영어 더빙은 보통이었고, 스페인어 더빙은 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려워서 프랑스어 더빙으로 봤다. 나쁘지 않았지만 그건 딱 그 수준, "코지코지" 또는 "컴시컴사", "쏘쏘"의 수준이었다. 그저 배우들의 어색한 딕션을 커버해 줄 정도의 더빙이었지, 과장된 표정이라든지 좀비 배우들의 움직임을 커버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더빙은  어이없는 전개와 기가 막히는 줄거리를 커버해줄 수는 (절대) 없는 것이다. 어쩌면 단지 배우들의 실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연기의 신이 내려와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없는 대사를 써준 작가 때문일 수도 있고, 섬세한 연출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제작진 때문일 수도 있다.  사극 톤으로 대사를 쓰고 말하느냐, 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연 이 상황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얼마나 화면이 기깔나고 신기한지가 아니라, 과연 이 상황에 대해 제3자도 그럴 듯하다고 공감할 것인가의 문제다.


섬세하지 못한 연출, 좀비같지 않은 사람들


오프닝 시퀀스의 "예쁜 화면"과는 달리(삼베옷을 입은 왕에게 생사초를 먹이며 그를 좀비로 되살려내는 모습의 색감은 참 예쁘다, 어이없지만) 어딘가 맥빠지는 연출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기껏 화면 안으로 들어가려 애쓰는 시청자를 다시 화면 너머로 뻥 차버리는 것 같은 장면의 정수는 좀비들의 달리기다. 아무리 봐도 좀비들은 전속력으로 뛰고 있다. 좀비도 빠르고 강할 수 있지만, 그렇게 빠르고 강해야 더 스릴감이 살아나겠지만, 암만 그래도 죽었다 살아난 존재들이라는 걸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지각을 면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전력질주하는 나의 모습, 런닝머신 위에서 기껏 10으로 올려놓고 뛰고 있는 나의 팔다리와 유사한 각도로 달리기릏 해서는 안 된다. 나, 너, 우리와 같은 각도로 달리는 건 곤란하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좀비들에게 쫓기는 와중에, 누가 좀비이고 누가 살아있는 사람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연출은 정말 곤란하다. 최소한 "어느 한 관절을 꺾고 뛰세요", "소리를 지르며 뛰세요", "가끔 비틀거려 주세요" 라는 오더가 있어야 했다. 아무래도 그런 오더는 없던 것 같고, 그냥 수십명의 사람들이 "자, 준비, 뛰어!"라는 말에 우르르 달려갔다가 "컷"이라는 말에 멈춘 게 뻔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최초의 좀비 역사극이라는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이 수도없이 이어지니 투입인력 대비 효과는 전혀 없다(오히려 반감된다). 제작비에 예민한 사람으로서 심장이 찢어질 지경이다.


분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보여주면 멋있는 화면이라는 말을 듣겠지, 이런 식으로 목을 자르고 팔을 자르면 잔혹한 하드보일드물이라는 평을 듣겠지, 이런 식으로 대사를 치면 무게 있는 암투극이라고들 하겠지, 라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장면은 소화하기 힘들다. 이건 섬세하지 못함을 넘어서 무신경한 정도다. 무심해도 너무 무심한 극본과 연출 덕분에 배우들도 이렇게 우선 면피하고 보는 인터뷰를 쏟아내는 건 아닌가 싶다. 드라마는 코워킹, 협력, 협업의 결정체다(물론 영화, 공연도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장기간의 협력과 협업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인터뷰를 백 번 해도, 신문기사가 아무리 쏟아져나와도 소용없다. 내용물이 이미 이런 식으로 나와있다.



사실은 최초조차 아닌 최초



<킹덤>의 장점은 새롭다는 것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또 기시감이 드는 부분도 굉장히 많다. 역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쓰는 (사실은 정말로 역모를 꿈꿨기 때문에 딱히 할말도 없지만) 세자 캐릭터는 <역린>의 정조도 닮았고 수많은 콘텐츠의 광해군과도 닮았다. <대립군>에서 광해군의 성장기를 참담한 전란과 함께 보여줬듯이 <킹덤>도 세자가 민중들의 (징그러운 ) 고초를 목격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실 부인으로서 세자를 없애버리고 싶어하는 중전도 <역린>에서 한지민이 이미 했는데, 대사와 표정까지 엄청 비슷하다(물론 사극 드라마에서 이런 중전은 늘 나온다). 풍양 조씨 외척과 유림의 싸움을 빌려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촘촘하지 못하게 따와서 쓰다보니 그냥 류승룡이 허세를 부리는 것 같다. 달리는 좀비들? <부산행>에서 지겹도록 봤다. <부산행>의 좀비들은 다 좀비들처럼 뛰었고, 드라마는 허섭할지언정 코리오그라피가 잘 된 영화였다. 조선의 좀비? 암투? 왕 지키기? <창궐>에서 봤다. <물괴>에서도 봤다. 둘 다 망한 영화지만, <킹덤>이 딱히 더 나은 점을 말해보라면 그저 덜 어색하다는 것 정도밖에 꼽지 못하겠다.


시즌2가 나온다고 한다. 해외에서 칭찬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분명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킹덤>의 여러 장점을 찾을 수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쪽이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콘텐츠가 나온 후의 홍보라든지 인터뷰는, 시즌2를 걱정하게 만든다. 김은희 작가든 제작진들이든 다음번에는 좀 더 섬세하게, 힘을 내어, 뭔가의 후광을 기대하지 않고, 최초가 아니어도 좋고 기깔나지 않아도 좋으니 뭐든 지금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사실 시즌2에 대한 기대도 생기지 않는다. 사실은 그냥 이러다가 <왕좌의 게임> 속 나이트워커들을 연상시키는 비주얼과 구도에 점차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콘텐츠 제왕"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라라고,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고, 스타 작가와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예고편을 볼 때에는 이것보다는 나은 것을 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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