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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Feb 23. 2019

강하고 아름답고 잔인하며 현명한

세상의 모든 덕목을 갖춘 그녀, 레이디 맥베스


요즘 자기 전 의식처럼 보고 있는 영화가 있다. 플로렌스 퓨 주연의 <레이디 맥베스>를 원본 버전으로도, 프랑스어 더빙 버전으로도 번갈아 돌려보고 있다. 짧은 영화라서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거의 모든 장면을 외우게 되었다. 이렇게 보는 영화들이 몇 개 있는데, 영화 나름의 순서를 지켜 가며 번갈아 내 자장가 역할을 한다. 오드리 헵번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나탈리 포트만의 <블랙 스완>, 다큐멘터리 <라 당스>와 <댄서>,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나오는 <스킨스>의 몇 편들. 아무리 뜯어봐도 나 같은 구석이 있는, 또는 내가 미친 듯 닮고 싶은 구석이 있는 캐릭터들의 영화인데 <레이디 맥베스>는 단연 후자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다못해 동경한다. 매일 저녁 <레이디 맥베스>를 보는 것은, 전무후무하게 강렬한 캐릭터인 주인공 '캐서린 레스터'와 그를 연기한 배우 플로렌스 퓨의 자세를 닮고 싶어서인 것 같다. 


강렬한 캐릭터, '레이디 맥베스'


나는 아직은 그렇게 무자비하게 살 수 없다. 강하고 정직하게 살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바에 솔직하고 또 그를 이루기 위해 무소의 뿔처럼 밀어붙이는 기력을 갖지 못했다. 만약 나를 영국 북부 황야에 떨어뜨려 놓는다면, 부끄러운 얘기지만, "춥다, 추워, 춥다, 추워" 얘기만 입에 달고 살면서 모피를 온몸에 칭칭 휘감고 살다가 감기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캐서린은 "나는 추위에 강해요", "찬바람을 쐬는 건 별 거 아니예요"라고 말하는 여자다. 모두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집 안에서 그저 어여쁜 꽃이자 남자들을 만족시켜주는 도구로 살아가도록 강요하지만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가고 들판을 돌아다닌다. <레이디 맥베스>는 이렇게 파워풀한 영화다. 사실인즉슨 파워풀하다는 말로 부족할 만큼 파워풀하다.



<레이디 맥베스>는 소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개작한 것으로, 감독은 배경을 영국 북부로 옮기고 그 결말도 손질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과 가난한 소녀가 결혼하는데 그들 사이에는 사랑은커녕 평등과 존중도 없다. 소녀는 자신을 경멸하는 남편, 함부로 대하는 시아버지 사이에서 생동감을 갈망한다. 권태를 이기지 못하는 여성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테레즈 라깽이나 채털리 부인의 여인과 닮아 있는 구석이 있다. 레이디 맥베스의 남편도 아내를 함부로 대하고, 그녀에게 정신적 및 육체적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아마도 그는 성적 불능인 것 같고, 피해의식에서인지 자신감 결여에서인지 캐서린을 마치 "암캐"처럼 취급한다). 이런 남자와 결혼한 캐서린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반항적인 구석이 있어보이는 하인 세바스찬을 사랑하게 된다. 일견 세바스찬이 먼저 캐서린을 유혹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바스찬을 자극하고 또 밤에 방으로 찾아온 세바스찬을 받아들인 것은 캐서린이다. 사실 여기서 모든 사건의 주동자는 온전히 캐서린이다. 그녀는 화면을 지배하고 사람을 지배하며 그녀를 둘러싼 세상을 지배한다. 



캐서린은 테레즈 라깽이나 채털리 부인이 아니다. 그녀는 성적으로 자신을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뭔가를 "각성"하거나 "배워나가는", 훈육과 보살핌과 계몽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권태를 거부하고 본래 자기가 갖고 있던 자기다움, 생동감과 박력과 강인함과 똑똑함과 잔인함, 무정함을 발휘하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그녀는 많은 여자들이 가지지 못했거나 또는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들어온 덕목들을 모두 갖고 있다. 그녀는 추위와 비바람을 무릅쓰고 산책을 한다. 하인을 부부 침실에 들이고 그에게 남편의 옷을 입힌다. 하인을 매질한 시아버지를 독살하고 말짱한 얼굴로 장례를 치른다. 자신을 창녀라고 비난하는 남편 앞에서 세바스찬의 바지를 벗기고 자기도 치마를 벗는다. 남편을 죽인 것보다 남편의 말을 죽인 데 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남편의 말은 그녀에게 딱히 잘못을 저지른 게 없으니까. 



플로렌스 퓨는 이 영화를 찍을 때 "영화가 시작할 때는 소녀로, 끝날 때는 여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고 캐서린은 욕망과 힘을 가진 소녀에서 욕망과 힘을 가진 여인이 된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소설의 결말은 캐서린과 세바스찬이 모두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지만, <레이디 맥베스>는 다르다 : 세바스찬이 "캐서린이 시아버지를 죽였으며, 남편도 죽였고, 남편의 사생아까지 죽였다"라고 그녀를 배신하자 캐서린은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한때는 세바스찬을 분명 사랑했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를 놓아주지 않겠다고 말했던 캐서린을 세바스찬은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으며, 그것은 분명 캐서린의 기준에 어긋나는 행위다. 세바스찬은 캐서린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고백을 할 틈도 주지 않았고, 자신이 집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참지 못하고는 캐서린에게 함부로 대했으며(마치 예전의 남편처럼), 그녀가 세바스찬을 위해 시아버지를 아무렇잖게 죽인 반면 세바스찬은 캐서린을 위해 사생아를 죽일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캐서린은 세바스찬을 응징한다. 세바스찬은 감옥에 가지만 캐서린은 이제 혼자서 넓은 집을 갖게 된다. 시아버지도 남편도 세바스찬도 없는 집에 앉아있는 그녀는 전혀 허망하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끔 밀어붙이는 힘이 있는 영화고,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다 모아도 종이 몇 장 되지 않을 것 않지만 무게감이 굉장한 영화다. 나는 원래부터 사투리가 좀 섞인 영어를 쓰는 편인데 이 영화를 많이 보다보니 사투리가 더 심해졌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영화를 보면서 늘 생각한다. 캐서린의 차갑게 파란 드레스를 보면서, 나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엄정하고 공정한, 뜨겁고 전력적인. 얼음과 불을 섞어놓은 것 같은 강하고 아름답고 현명하고 잔인한 여자. 이런 여자에 대한 영화는 확실히 이제까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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