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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Feb 23. 2019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증인>


영화 <증인>이 호평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정우성은 확실히 힘을 주는 연기보다는 힘을 빼는 연기가 어울리는 배우인 듯 하다(물론 <아수라>로 말하자면, <그것이 알고 싶다>와 한글자막 덕분에 재평가를 하게 된 작품이긴 했다, 실존인물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고요). 김향기의 연기도 훌륭했다. 내러티브 측면에서 볼 때에도 큰 무리가 없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송윤아 배우와 "갑분멜" 해피엔딩은 없어도 될 장치였고 긴장감이 부족한 영화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특정한 장면과 대사 때문에 이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김향기의 캐릭터를 잊지 않고 여러번, 두고두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한 장면에서 영화관에서 몹시 많이 울었는데, 하마터면 큰 소리로 숨넘어가게 울 뻔 했다(이미 거의 대성통곡 직전이었다. 관객도 꽤 많았는데 우는 사람은 나 하나여서 그 와중에도 창피하긴 했지만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다른 관객석에서 훌쩍훌쩍 소리가 날 때엔 물론 가만히 있었다). 옆자리에서 영화를 보던 친구는 내가 하도 우니까 넌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니, 라고 놀리듯이 귓속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난 좋은 사람이 될 거야, 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눈이 퉁퉁 붓도록 헉 헉 하면서 울어버렸다.


기승전결은 빤한 이야기, 그렇지만



<증인>은 한때 약자의 편에 서기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대형 로펌에 들어간 변호사(정우성)와, 그가 국선변호를 맡게 된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지만 자폐증이 있어 증인대에 서기가 어려운 소녀(김향기)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다. 이미 그 등장인물로 이야기 전체를 짐작할 수 있긴 하다. 살인사건의 핵심 증거를 파악하기 위해서 변호사는 증인과 접촉하려 할 것이다. 자폐증을 가진 딸이 상처받을까 봐, 또는 자기 사건이 망가질까 봐 등의 이유로 부모와 검사는 그를 막으려 할 것이지만 어떻게든 변호사는 증인과 가까워져서 내막을 파악하려고 할 것이다. 자폐에 대해 몰랐던 사람으로서, 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증인을 조금씩 이해하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증인의 편에 서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이미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앞이 빤한 기승전결의 디테일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가 될 것이다. 어떤 인물이 어떤 움직임과 어떤 대사로 관객을 움직일 것인가? 내가 감독이라면 여기에 신경을 썼을 것 같고, 이한 감독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백인 백색이라고 아마 관객에게 호소하는 부분도 모두 다르리라. 누구는 장애에 대한 편견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고, 누구는 배심원단이라는 제도에 대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김향기의 연기는 조승우의 연기를 떠올리게 했는데, 조승우는 <말아톤>뿐만 아니라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연기를 엄청나게 잘 해냈고 그 때문에 나는 <비밀의 숲>을 보면서도 비슷한 이유로 울었던 적이 있다. 자폐증의 핵심적 특징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자신만의 폐쇄적인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서만 머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경중은 있겠으나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외부의 자극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외부의 존재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콘택트(Arrival)>에서 언어학자가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만큼이나 자신과 다른 이해불가한 존재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가려고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다.


나는 정신병자입니까, 혹은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건 괴로웠고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두려웠다. 늘 아랫배가 당기고 아팠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 감정에 어떻게 이입하고 "대응"하는 것이 적절한 행동인지 어려워했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늘 어렵다. 이 경우에 이런 말을 하는 게 괜찮은가, 내가 잘못된 선례를 보고 학습한 것은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행동하는가. 불과 어제도 나는 싸움 아닌 싸움을 하면서 꾸지람을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해"라는 게 싸움의 골자였다. 난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자폐증도 아니다. 다른 종류의 정신장애들이 있지만, 드라마에서 묘사하며 계속 유행하고 있는 캐릭터인 "천재 사이코패스"와는 당연하게도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는 그 장애를 안고 그러려니 살 수 있었다. 가족과 극소수의 친구가 있었고 나는 정해진 프로토콜처럼 소통할 수 있었다. 연애라 할만한 것들은 극단적으로 짧았는데 나는 대수롭잖게, 좀 체념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습게도 직장에 나가면서부터 상황이 좀 바뀌었고 연애가 길어지면서 나는 내 장애를 장애라고, 질병이라고, "정신병"이라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매일같이 만나고 있다. 정우성에게 김향기가 되물었듯이, "나는 정신병자입니까"라고 물어야 하는 일들이 자꾸 생긴다 - 그리고 반대로 그에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르듯 나도 다른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건 변명 같아서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그의 얼굴, 말투, 행동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들이 지나치게 버겁다. 임계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반드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올 것이라고 나는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보면서 몹시 울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증인대에 서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하는 엄마(문영남)에게, 김향기가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또박또박 말하는 순간 눈물이 흘러나왔다. 엄마, 나는 글도 잘 읽고 똑똑하지만 변호사는 될 수 없겠지, 하지만 증인은 될 수 있어, 증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이 정신병이라고 말하는 자폐증을 갖고 있지만 좋은 사람은 얼마든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딸.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엄마에게 엄마, 난 다른 건 될 수 없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좋은 사람만은 반드시 될 수 있어,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때가 있었다. 무엇이 되고 싶다, 라고 생각할 만큼 나이가 어리고 그만큼 순진한 의욕이 있던 때가 있었다. 자신감과 정의감이 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 모두 어디로 날아가 없어져 버렸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라면 매일 남들과 밥을 먹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을 할 때는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거절과 동의는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등등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서 나만큼 심각하게 고민하고 애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쓸데없는 고민들 덕분에 나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키고 고갈시켰다. 이제 나는 너무 닳았다. 쇠락한 성처럼 낡았다. 한동안 나는 무엇이 될 거야, 라는 말은커녕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한 적 없다. 당장 다음 주말의 일도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 미래와 의지라는 것은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맨날 내가 얼마나 마모되었는지를 생각하느라고 이제는 좋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던 시절이 그리워서 펑펑 울었다. <증인> 속 소녀는 무엇에도 닳아 없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아이야, 언제나 남을 이해하는 건 어렵고 너는 누군가를 흉내내면서 살아가야 할 거야, 하지만 어쩌면 그런 일에 지나치게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을지 몰라, 대신에 너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니까. 하지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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