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파이프 PIPE K Mar 08. 2023

3. 스민과의 인터뷰

살아가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


"궁극적으로 저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라는 사람을 이해시키고 싶어요. 저는 가끔씩 스스로가 외계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혼자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는. 하지만 저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싶지 않아요. 그들과 연결되고 싶고, 소통하고 싶고, 공감하고 싶어요."


-


  여기,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는 자신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존재라는 생각에 때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음악'이라는 다리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하고, 그들과의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 한다. 내가 소개할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는, 대학을 졸업한 뒤 가수 겸 작곡가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스민'이다. 매일같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습하며 작곡 수업을 듣는 스민은, 전업 음악가를 꿈꾸는 평범한 20대의 청년이다.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른 20대들이 처해 있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막막한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에 휩싸여 있고, 그 속에서 자주 불안감을 느낀다. 또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소소한 위로를 얻으며 때로 자신의 노력에 깊은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무언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존재. 그리고 주어진 현재를 열심히, 또 능력껏 살아내려는 존재. 그에게서 찾을 수 있는 모습들은 그다지 유별나지도, 또 이상스럽지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스민에게는 삶의 모든 방면에서 분명히 남들보다 눈에 띄는 면모들이 있고,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방식에는 꽤나 흥미로운 구석들이 있다. 그 방식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후술할 모든 인터뷰에서 'K'는 질문자인 본인을 지칭함을 앞서 밝힌다.




K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스민 11시 정도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어항에 불을 켜고 아픈 친구들이 없는지 확인을 합니다. 그 다음은 새우항을 확인하고, 플라나리아가 어제보다 커졌는지 확인한 다음 물을 갈아줘요.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인터넷을 찾아보고요. 그 다음에 커피든 차든 따뜻한 걸 마시고 과외를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노래랑 기타 연습을 한 후에, 드라마를 보고 잠에 들어요.

K 다른 특별한 일과가 있는 날은 없나요?

스민 금요일이요. 자기계발의 날이에요. 심리 상담도 가고, 음악 수업도 듣고.

K 어항과 새우항 이야기가 재미있는데요, 그럼 집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키우시는 건가요?

스민 화분이 9개 있고, 어항과 새우항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그 안에 여러 마리의 물고기와 새우가 살고 있습니다.

K 굉장히 많은 것들을 키우고 계시는군요. 그 친구들을 키우는 마음은 어떤가요? 즐거움을 느끼나요, 아니면 책임감을 더 많이 느끼나요?

스민 제일 큰 마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에요. 제 책상 앞에 화이트보드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어요. "물고기랑 새우가 죽을 것 같아서, 나도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그러니까 괜찮다." 물론 작은 생명들을 키우다 보면, 잠들기 전까지 괜찮았던 아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거짓말처럼 죽어버리기도 해요. 그때마다 굉장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죽음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어요. 삶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즐거움을 느끼냐고 물어보셨는데, 사실 그렇게 즐겁지는 않아요. 물고기와 새우는 귀여운 존재들이고 저에게 행복을 주지만, 그것들을 키우는 궁극적인 목표는 죽음에 익숙해지는 거에요.  




  누군가의 일상생활을 가장 직관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이 어떤 하루 일과를 보내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하루 동안의 생활 패턴들은 비교적 가공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정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비밀스러운 데가 있는 스민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에게 평소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물었다. 그의 하루는, 말하자면 생명으로 가득 둘러싸인 공간으로부터 시작되어 다시 그 생명들이 있는 공간으로 돌아오면서 마무리된다. 이러한 생활이 주는 특별함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 여러 개의 화분과 어항으로 가득 찬 방에서 잠에 들고 또 하루를 시작하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더 생명력 있는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자신처럼 숨을 쉬고 잠을 자며 움직이는 존재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은 일률적인 삶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생명을 돌보면서 우리는 숨쉬는 것들의 순수하고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고, 우리 스스로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재발견하게 된다. 또한 화분에 물을 주고 어항을 청소하는 등의 사소한 습관을 들이는 일은 자신의 삶을 더 자주 들여다보도록 만드는 섬세함을 길러 주며, 새로운 생명들을 맞이하고 목숨을 다한 생명들을 떠나보내는 경험들은 삶에서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죽음을 더 성숙하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생명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는 매일 '사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K 죽음이 두려운가요?

스민 저에게 죽음이란 무의미와도 같은데, 저는 무의미에 대한 이해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 인생에는 '무의미'라는 게 없는 거죠.

K 삶은 연속적인 것이고,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인데 죽음은 그 연속이 불연속으로 바뀌는 순간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는 건가요?

스민 어떻게 보면 비슷하네요. 저는 의미가 있는 것들은 다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인생은 필요한 것들을 계속해서 모으는 과정이고요. 저의 삶 자체가 그런 식으로 움직입니다. 저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그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지 먼저 찾아야 해요. 그리고 의미를 찾게 되면, 그것을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의미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죽음이에요. 인생이란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탑으로 쌓아올리는 과정인데, 그 끝은 결국 모든 것들이 한순간 무의미해지는 순간, 즉 죽음이라는 거죠. 저에게 죽음이란 의미의 탑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냥 그 탑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연속적인 제 삶이 갑자기 불연속으로 바뀌는 순간이 죽음이라는 말도 맞는 것 같네요.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라. 삼차원의 공간에서 선형적인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매우 한정적이고, 또 모호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죽음은 모든 존재들이 맞이하게 될 가장 필연적인 운명이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의 과정들은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매일 물고기에게 밥을 주면서 죽음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는 스민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 보았다. 그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는 죽음을 무의미의 순간, 즉 '의미의 탑'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순간이라고 답하며 그 '무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것들을 모으는 데 집중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무의미'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즉, 그는 죽음의 순간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삶의 '의미 찾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태도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이 주는 공포를 극복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삶의 순간에 놓여 있는 인간은 죽음을 인식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미지의 순간을 상상하면서 공허함과 허무주의에 빠져들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스민은 '의미'와 '무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순간들에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K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나요?

스민 존재론적인 주제의 대화를 좋아해요. 혹은 상대에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듣는 것?

K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스민 꼭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주제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음악, 사랑, 상태, 감정, 거북이.

K 들어보니까 전부 무형적인 것들이네요. 거북이만 제외하고요. 스민 씨는 '있는 것'들의 이야기에는 흥미가 없나요? 실재하는 것들이요.

스민 그런가 봐요. 그래서 제가 우울한 것 아니에요? (웃음) 그래도 식물과 동물은 좋아해요.

K 사람이 만든 것들에 관심이 없는 거네요.

스민 무의미하지 않나요? 사람이 만든 것들이요. 잘 이해가 안 돼요. '필요한' 물건이라는 건 없어요. 물질적인 것들은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제 통제 바깥에 있는 것들이 두렵고, 또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우울증은 아니에요. 그런 것들에게 재미를 느끼고 힘을 얻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저는 평생 풀 수 없는 숙제를 안고서 살아가는 거죠.




  스민은 앞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의미 있는 것들을 찾고, 또 모으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즉, 무의미를 탐구하는 데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대상들에게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의미 찾기'에 몰두하는 그가 삶에서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가 평소에 무슨 고민들을 하고 있으며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이번에는 사람들과의 주된 대화 주제는 무엇인지를 물었고, 그는 유형의 것들이 아닌 무형의 것들에만 관심이 있다는 흥미로운 대답을 해 왔다. 조금 더 특정하자면, 그는 감정과 기분, 인간관계와 같이 손으로 만져지지 않으며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삶에서 '필요한' 것들, 즉 의미 있는 것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망하는 유형적이고 실재적인 것들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듯한 그의 이러한 태도에서 나는 조금은 초인적인 면모까지도 목격할 수 있었다.


  '무의미'가 아니라 '의미'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와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삶을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현대인들이 목매는 성공의 가시적인 지표들은, 상대적인 수치로 정형화되는 것들이며 삶의 맥락 속에서 언제든 그 중요성이 변화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실재하는 물질들은 외부로부터의 힘에 의해 언제든 그 의미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민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 혹은 인간 존재 너머의 거대한 섭리에 대한 것들이다. 이러한 생명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가치는 항상 절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 의미를 잃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물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삶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더 큰 갈증을 느끼고 관심을 쏟아야 하는 대상들은, 사랑과 평화, 자연처럼 우리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삶의 근원적인 요소들이 되어야 한다.




K 음악은 본인의 최종적인 목표인가요, 아니면 자기표현을 위해 스민 씨가 택한 하나의 방식인가요?

스민 음악은 아마도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 같아요. 저의 상태를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고, 저의 생각들을 가장 꾸밈없이 표현해 주는. 마음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운 음악들이 만들어지고,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서는 좋은 음악들이 만들어져요. 음악은 제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언어에요. 제가 호주에 있을 때, 오픈 마이크 무대에서 노래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Let It Go'라는 제목의 잔잔한 노래를 불렀었는데, 무대를 끝내고 내려오니까 어떤 중년 남성분이 'You have something.' 이라는 말을 해 주셨어요. 저에게는 뭔가가 있다고, 가끔씩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저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요.

K 만약 본인에게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 재능과 뜻이 있었다면, 그 길을 택했을까요? 스민씨는 음악이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사람인가요?

스민 저를 잘 표현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도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의 저에게 그게 글쓰기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제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음악만은, 어느 정도 잘 해낼 자신이 있는 거죠.

K 그렇다면 스민 씨는 왜 자기를 표현하려고 하는 거죠?

스민 궁극적으로 저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라는 사람을 이해시키고 싶어요. 저는 가끔씩 스스로가 외계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혼자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는. 하지만 저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싶지 않아요. 그들과 연결되고 싶고, 소통하고 싶고, 공감하고 싶어요.




  진실로 가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면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스민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두는 대상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그는 스스로를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느끼는 외로움의 가장 깊은 뿌리는 아마도 타인과의 단절에서 오는 상심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의 소통 방식과는 다르며,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 온전히 납득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음악은, 이러한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과도 같다. 그는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세상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그는 자기를 표현함으로써 타인과 가까워지려고 하고, 나아가 모든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 한다. 즉, 그가 간절하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가장 통제하기 어려우며 불안정한 존재인 '인간'들에게 다가가고,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이루는 공동체에 속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스민이 자신의 방에서 생명들에게 마음을 나누고 애정을 쏟는 일도, 삶에서 '필요한' 존재들을 찾아 의미의 탑을 쌓아올리는 일도, 음악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일도 결국 타인과의 단절을 극복해 내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이루어 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스민은, 그러한 꿈을 성취하기 위해 매일 인간의 언어를 배워 가고 있는 한 명의 외롭고 따뜻한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K 자신이 집중해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혹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스민 단순하게 생각해! 네가 원하는 것들은 오직 너만 알 수 있어. 공책을 펴고, 펜을 들어서 한번 적어 봐.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그리고 그걸 이루려면 뭘 해야 하는지. 다 썼다면, 그걸 시작해!


-


Background Image : (C) 2023. PIPE K

매거진의 이전글 2. 인터뷰를 하기로 결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