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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구 브랜드 회고록을 마치며

#10 혼자라서 놓치고, 발견한 것들

by 걷는사람 개옹 Feb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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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출을 이루어낸 날, 나는 묵묵히 생각했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



내가 몸담은 국내 문구시장은 작았다. 한국의 잉크 브랜드들이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은 전체의 30% 이하에 불과했다. 나머지 70%는 수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만큼 해외 시장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출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이미 해외 시장에는 선점한 한국 브랜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처럼 새롭게 진입하려는 신생 브랜드에게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작은 신생 브랜드로서 해외 바이어들에게 신뢰를 주는 일은 더 어려웠다. 수출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제품의 품질만이 아니었기에 국내시장 안에서 많은 인프라를 구축하고 신뢰성을 보여주는 행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그것이 시장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증명해야 했다. 국내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그림이, 그들에게 론칭 1년 만에 빠르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매출에 크게 도움 되지 않는 팝업이나, 이벤트, 협업들을 무리해서 진행하기도 했다. 


매출을 신경 쓰면서 동시에 수출을 위한 큰 그림까지 그리다 보니,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증명할 수 없는 해외시장을 향해 이렇게 애쓰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 회의감이 밀려오곤 했다. 수출을 위해 나는 매일 이메일을 쓰고, 회의를 주선하고, 답변이 오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긴 시간을 거쳐, 마침내 첫 수출 계약이 성사되었다. 작은 규모였지만, 내가 만든 잉크가 국경을 넘어 누군가의 손에 닿게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충분히 값진 성과였다.


브랜드의 휴지기를 고민하면서도, 손에 쥔 첫 수출의 성과를 오래도록 곱씹었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 순간이, 오히려 또 다른 출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라 생각했던 지점에서, 나는 또다른 시작을 읊조리고 있었다.







혼자라서 놓치고, 혼자라서 발견한 것들



브랜드를 시작할 때 나는 만년필 시장을 2030 세대로 확대하고자 했다. 기존의 고급 문구류 소비자뿐 아니라, 캘리그래피나 손글씨를 즐기는 사람들, 드로잉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고급 문구류와 일반 디자인 문구의 간극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그리고 잉크는 그 간극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요소였다. 잉크라는 제품은 단순히 색상의 매력만으로 소비되지 않았다.


만년필은 여전히 고급스럽고 특별한 향유물로 여겨졌고, 시장은 얼핏 비주류 같으면서도 그들만의 단단한 문화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캘리그래피, 드로잉, 손글씨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잉크가 활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시장의 소비력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나는 더 이상 나 혼자만의 판단으로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이 과정은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것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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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 이상 혼자인 게, 힘들지도 않다.


  불과 몇 시간 전, 찬바람을 뚫고 박스 6개를 실은 구루마(대차)를 끌며 500미터 거리에 있는 우체국으로 EMS 발송을 하러 가는 길. 문득 더 이상 혼자인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외로움에 익숙해지니, 오히려 강해졌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으니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들, 해낼 수 있다는 확신, 스스로를 밀어붙일 수 있는 강인함이 자리 잡았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나를 한참 안쓰럽게 바라보시더니, 결국 뒤에서 대차를 함께 밀어주셨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제는 이런 순간들도 한 편의 시트콤처럼 느껴진다. 혼자서 가다가도, 뜻밖의 소중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인생의 아이러니를 곱씹는다. 가끔 노동에 온몸이 쑤시고 뼈마디가 저려오지만, 한숨 한 번 길게 내쉬고 다시 힘차게 걷는다.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는 건 내 몫이니까.



그래도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윙크를 운영하며 가장 크게 깨달은 교훈은, 혼자서는 절대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문구시장의 문제점들을 타파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시장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같은 비전을 공유하며 함께 걸어갈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구시장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상품을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일을 넘어, 문구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더하는 일이었다. 이 시장 안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단순히 시장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로서 재정의될 것인지가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다.






잠시 휴식기를 가지며


창작과 경영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윙크를 운영하며, 나는 창작자로서의 자아와 경영자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해야 했다. 결국, 나는 디자이너로서의 챕터를 마감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는 분명하다. 나는 이제 브랜드를 기획하고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2의 챕터를 시작하는 지금, 내가 어떤 가치와 메시지를 담아낼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돌이켜보면, 과정은 쉽지 않았고, 결과는 단순했다. 그러나 나는 이 단순한 결과 속에서 큰 의미를 느낀다. 그것은 내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시작이 단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잠시 멈추어 방향을 점검하고, 다음 발걸음을 더 단단히 내디딜 준비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브랜드가 잠시 쉬어간다는 것은 끝이 아닌 '나'의 재정비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부터 나는 새롭게 걸어갈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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