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똑같이 남편과 카톡을 주고받던 중 상당히 갑작스럽고도 예상치 못했던 소식을 들었다.
“엄마 일 관뒀대”
“잉? 진짜??????????”
사실 어머님이 다니던 직장에서 상사와의 관계로 많이 힘들어하셨던 걸 생각하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내가 보고도 믿지 못할 만큼 놀랐던 이유는 따로 있다.
남편과 똑같은, 아니 어머님과 똑같은 남편이라는 표현이 맞겠지? 여하튼 나의 남편은 조그마한 것이라도 변화를 아주아주 싫어하는 안정 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죄송한 말씀일지 모르겠지만 난 사실 속으로 어머님이 매번 그만둬야지라고 말씀하실지라도 일을 ‘안’ 그만두시는 게 아니라 ‘못’ 그만두실 거라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내게는 가히 충격적인 소식이었음에도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은 전에 없이 바빠졌고 하루아침에 없던 계획이 생겨났다.
“그럼 어머님보고 아기 좀 봐달라고 하면 안 되나?ㅋㅋㅋㅋㅋㅋ“
처음엔 사실 100 프로 진지하지 않았다.
왜냐면 요즘 세상에서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부모님 찬스는 우리에게는 애초에 없던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내가 복직을 하면 돌이 갓 지난 당시의 아기는 7시 30분에 어린이집에 가서 11시간 정도를 보낸 뒤 저녁 6시 30분이나 되어야 집에 올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피붙이를 떼내는 게 그렇게 아픈 건지 겪어보기 전엔 미처 몰랐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찢어졌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고 ‘잘 적응하겠지’라고 긍정회로를 돌리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친정엄마는 저 멀리 남쪽나라에 계시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다 오늘날을 대비해 엄마가 그린 큰 그림이었던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더 어릴 적부터 알게 모르게 본인은 나중에라도 손주를 봐줄 생각은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내도 그 나이 되면 여기저기 자유롭게 놀러 다녀야지, 묶이기 싫다 “ 기억의 왜곡일 수 있지만 언젠가 이런 말을 엄마에게서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엄마의 손이 여전히 너무나 필요하다고 느낄 거라는 걸 1도 몰랐던 시절, 엄마의 그 말이 맞다고 동조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미 동조했기에 번복하기도 머쓱했을뿐더러 난 부모님 걱정 같은 건 안 끼치고 알아서 잘 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k장녀니 징징거리며 도와달라고 한마디 말도 못 하는 심지어 무뚝뚝하기까지 한 경상도 딸이니 뭐 말 다 했다.
친정아빠는? 타이밍 기가 막히게도 아기가 태어난 해에 더는 보행이 어려운 희귀병에 걸리시어 본인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고, 결국 난 친정에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명백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시댁에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두 분 다 일을 하시고 계셨기에 ‘일 관두시고 아기 봐주세요’라는 생각은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복직하면 아기를 돌봐줄 가족은 있냐는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했던 내가 생각난다.
“내 새끼 내가 키워야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말을 한 사람이 정말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 치 앞을 못 내다보는 순진한 초보 엄마였던 나 자신이다.
인생에 계획이라곤 없는 무계획 끝판왕 대문자 P인 나는 복직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와서야 대한민국에서 맞벌이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아기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 현실적인 고민에 괴로워하던 시점, 어머님의 퇴사 소식은 말 그대로 갑자기 내게 없던 선택지가 생겼다는 청신호였고 우리의 어머님 모시기 작전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