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고 어머님? 시어머님이랑 같이 살겠다고???”
주변의 반응이 놀라운 게 더 놀라울 만큼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없던 선택지가 생겼다는 사실이 감사한 마음에 흥분감이 더 컸다.
만삭의 몸으로 육아휴직을 시작하고는 이미 몸무게가 꽤 나가는 아기가 더는 커지지 않게 하려고 부지런히도 동네 산책을 하며 무거운 몸으로 참 많이 걸어 다녔다.
그때를 회상하자면 놀라우리만큼 전과는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아주아주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이렇게 아기 키우는 집이 많았어?
어린이집이 단지마다 이렇게 하나씩 있네?
나 같은 임산부가 저기 또 있네, 출산일이 언제려나?
유모차는 어떻게 다니라고 이런 턱이 있는 거지?
분명 같은 거리였는데 마치 전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기분이었다.
사실 무엇보다 그 시절 가장 부러웠던 건(여전히 부러운 건) 만삭의 출산을 앞둔 임산부 혹은 갓난아기를 키우는 자신의 딸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친정엄마의 존재였다.
출산을 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엄마 없이 혼자 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아기를 낳는다고 크게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기를 낳고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산후조리를 하거나 아기를 키우는 친구들을 봐도 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나에게는 없는 선택지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은연중에 합의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 우리 엄마는 멀리 살고, 그렇기에 우리 엄마는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는지 그 언젠가의 엄마 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쨌든 그래서 기대 없던, 엄마의 케어 같은 건 익숙하지 않던 내가 내 또래의 아기 엄마가 본인의 엄마가 끌어주는 유모차 옆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엄마가 옆에,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늘 생업으로 바쁜 엄마에게 나는 산후조리를 부탁하지도, 아기를 돌봐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다. 아니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도 ‘엄마가 좀 도와줄까?’라는 빈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무뚝뚝하고 건조한 우리 모녀의 관계에서는 뭐 딱히 이상할 일도 아니었지만 호르몬 탓이었던지 뭔지 이상하게 마음이 자주 슬퍼졌던 때였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님이 일을 관두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저 반가웠다. 도와달라는 요청에 흔쾌히 요청해 주신 어머님께 너무나 감사했을 뿐이다.
나는 원래부터 시부모님께 애교 있는 며느리가 아니었다. 친정 부모님에게도 아들 보다 더 무뚝뚝한 딸인데 시부모님 한테라고 그게 갑자기 바뀔 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렇다고 애써 예쁨 받으려 잘하는 척도 할 줄 모른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그랬다. 그래서 그냥 나로 살았다. 그게 시어머님이든 시아버님이든, 그냥 내 진심만 있으면 그만이지 너무 애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부모님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애쓰지 않는 만큼 시부모님도 애쓰지 않으셨고 서로에게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는 자연스럽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고부관계가 잘 성립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사이엔 중간 역할을 잘 수행해주는 남편이 있었으니 가능했겠지만.
어쨌든 그리해서 나의 시어머님과의 동거 결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울 북부에서 경기 남부까지 길이 막히지 않는 시간대에 자차로도 한 시간을 족히 걸리는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운전도 할 줄 모르시는 어머님이 지하철로 출퇴근하시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그래서 그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같이 생활하시는 게 어떠냐 제안했을 뿐이었고 구체적으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주변의 반응은 뜨거웠다.
“나라면 돌봄 시터 이모님 구하겠다”
“시어머님이랑 불편해서 어떻게 같이 사냐”
“먼저 같이 살자고 하다니 너 대단하다”
뭐 대부분 이런 반응들이었다.
그래서 잠깐 생각했다. ‘내가 이상한가?’ 그런데 사실 그 뒤로도 어머님과 같이 살아보기 전까지는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모든 걸 계획하고 따져보고 행동하기보다 행동하면서 느끼는 단순함과 무계획의 극 P 성향의 초보 엄마였으니까.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하다.
스무 살 이후로 친정 부모님과도 같이 살지 않았는데 서른 중반이 되어 남편의 어머님과 같이 사는걸 왜 그렇게 쉽게 생각했는지 말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어머님께 감사하고 여러모로 긍정적인 점 또한 많다. 다만, 단지 경험 전과 실제의 경험의 갭이 생각보다 컸을 뿐이다. 그래서 향후 이 연재북에서는 실제 생활속의 우리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