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일이었다. 그것도 완전히.
아기를 낳고 나면 그냥 부모는 회사 가고 아기는 어린이집 가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여겼던 때가 있다.
그러니 당장 아파트 단지에 보이는 어린이집만 해도 이렇게나 많은데 15개월 뒤에나 어린이집 보낼 건데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대기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주변의 조언대로 남편은 정말 아기가 태어나고 다음날 출생신고를 하고 와서는 곧바로 어린이집 대기를 걸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보낼걸 생각해야 할 줄이야. 그것만으로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또 다른 난관들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초보 엄마에게는 그야말로 모든 단계가 난관이었다.
복직이 7월 예정이었던 나는 해맑게도 복직 전 2개월 정도면 아기도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나도 복직할 마음의 준비를 하면 딱 좋겠네 생각하며 5월에 입소대기신청을 걸었다. 태어나자마자 대기 신청을 걸었고, 우린 맞벌이니 어린이집에 못 보낸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심도 대책도 없이 시간을 보내던 나날들이었다.
해가 넘어갔는데도 연락이 없어서 이상하다 생각하며 신청현황을 확인했더니 순번이 오히려 뒤로 밀려있었다. 분명 1순위였는데 말이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린이집에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고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어머님, 3월 신학기 모집은 이미 마감이 되었어요. 5월로 신청하셔서 아마 자동으로 넘어간 것 같네요. 어쩌죠?”
망.했.다.
심장이 철컹 내려앉아 다급하게 2순위로 신청한 어린이집에도 전화를 했지만 누가 이사를 가서 자리가 나지 않는 이상 결원이 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어린이집도 신학기 입학이 있다는 걸 당연하다는 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 정도는 엄마가 다 알고 있어야 한단다. 한 순간 대책 없는 엄마가 된 것만 같아서 속상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던 그때였다.
처음으로 위기감을 맛보았다.
아, 회사로 못 돌아갈 수도 있겠다.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 없었으니 남편이 다시 휴직을 내든 내가 휴직은 연장하든 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리 나면 꼭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거의 울먹거리며 어린이집마다 부탁을 하고 나니 머리가 멍했다.
‘아, 이게 현실 육아라는 거구나’ 또 한 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러면서 또 한 번 엄마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내 처지가 가여워졌고 그래서 자주 외로워졌다.
신학기 입소라는 명목하에 예정보다 빨리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긴 해야 했지만 다행히 어린이집 한 곳에서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로써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다른 문제가 또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나는 천성이 게을러 사전 조사 같은 건 할 생각도 못했기에 더더욱 모르는 것 투성이인 엄마였다.
이번엔 등하원 시간이다.
그냥 ‘우리가 회사에 있는 동안 아기는 어린이집에 가면 된다’가 단순한 내 생각의 끝이었다. 어린이집 정규 보육시간이 9시-4시란다. 응?
대한민국 직장인들 평균적인 근무시간은 9-6 아니야? 근데 아기 스케줄은 9-4? 어떡하라는 거지? 수많은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가 머리에서 스쳐 지나가던 순간이었다. 이모님, 친정엄마, 시부모님 등등 도움 없이 키우기 어렵다던 그 이야기들. 당차게 내 새끼 내가 키우겠다 얘기하던 나를 쳐다보던 그 묘한 눈빛들의 의미를 그제야 느꼈던 거다.
후회해도 늦었고 바쁘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남편은 여섯 시면 집에서 나가고, 나는 일곱 시 오십 분에 셔틀을 타야 하니 등원은 당연 나의 몫일테고 적어도 아기를 일곱 시 사십 분에는 어린이집에 보내야 가능한 스케줄이었다. 하원은? 남편이 아무리 빨라도 여섯 시에 도착하니 여섯 시 반은 되어야 아기는 집에 올 수 있는 거였다. 내가 회사에서 9시간을 보내는데, 돌쟁이 아기는 어린이집에서 11시간을 꼬박 보내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불쌍해’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왔다.
그래서 어머님이 도와주시기로 한 결정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고 딱 9시 등원, 4시 하원만 도와주시고 6시까지만 좀 놀아주시면 그것만으로 너무너무 좋을 것 같았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런 초심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마음속에 이런저런 욕심이 들어서기까지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이제는 현실을 더 마주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