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영국사람이다.
영국인 남편은 한국인인 나보다 훨씬 더 한국에 관심이 많아 나는 한국 소식을 남편에게 전해 듣곤 한다. 최근 남편이 Alexander Armstrong in South Korea라는 한국 소개 프로그램을 보길래 옆에서 슬쩍 보니 경복궁의 전경이 보인다. 예전에 내가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자 남편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혀를 끌끌 찼다. 버킹엄궁전 근위병 교대식은 봤다고 받아치는 나에게 그제야 자기는 그걸 못 봤다고 실토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한국사람인 나는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영국사람인 남편은 버킹엄궁전 근위병 교대식을 본 적이 없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가까운 곳은 언제든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오히려 안 가게 되는 일이 흔하다. 해외여행은 여러 번 다녀왔지만 제주도는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영영 기회를 잃기도 한다.
우리가 전에 살던 집은 보태닉 가든 근처였다.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여서 가끔 강아지들 데리고 산책도 하곤 했다. 그곳에서는 매년 여름 Gardens Magic이라는 이름의 음악회가 열린다. 1월 3주간 클래식, 재즈, 팝, 락, 인디 등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콘서트 시리즈다. 어둠이 스르르 내려앉는 어스름한 가든에서 꽃향기에 감싸여 까슬까슬한 잔디밭에 앉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지만 매번 이번에는 꼭 가자, 말만 하고 그만이었다. 그렇게 10분 거리에 살 때도 못 갔으니 이러다 언젠가 이 도시를 떠날 때까지 못 가보는 건 아닌가, 갑자기 애가 탄다.
그러니, 뭔가 할 마음이 들었다면 바쁘고 귀찮아도 나중에 할 수 있어도 지금, 하는 게 맞다. 할까 말까 할 때는 그냥 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Gardens Magic도 이번 주면 끝이 난다. 이번 주말에는 꼭 가야지, 다시 한번 마음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