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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Feb 01. 2023

Passive aggressive

말속에 뼈가 있다? 은근히 돌려깐다?


외국에 살다 보니 나와는 문화, 사상, 생활 습관 등이 다른 이들과 많이 부딪히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우리 한국인과는 '이런 게 참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점점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비슷해'라는 사고로 전환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외국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말을 할 때도 더 객관적으로 할 말 다 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막 쉽게 원나잇 스탠드도 하고 직장 상사에게도 고개 똑바로 들고 할 말 다하지 않던가. 하지만 막상 그 사람들과 섞여서 살다 보니 화면 속 세상과는 참 많이 달라 보인다.


여기 사람들도 다를 게 없다. 상사에게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는다(상사에 관한 게 아니라면 마구 토로한다). 뒷담화를 상당히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한 사람에게 정착해 오래가는 사이도 많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passive aggressive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고 돌려서 그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에게 passive aggressive 하다고 한다.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그 사람 말속에 뼈가 있어, 사람을 은근히 돌려까, 정도일까? 나는 뉴질랜드에 오기 전까지 외국인들과 전혀 교류가 없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자기감정이나 의견을 꾸밈없이 말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들도 본심을 숨기고 말한다. 그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건 드러나지 않건. Passive aggressive는 그 의도가 빤히 눈에 보일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앞에서는 웃고 좋은 말만 하면서 뒤에서는 별 말 다 하고 다니는 경우도 꽤나 많다.


한국인들은 말을 조심해서 한다. 아니, 조심한다고 믿는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채야 한다고, 사람은 자고로 눈치가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살면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너 오늘 얼굴이 왜 그래? 

옷이 그게 뭐냐?


우리는 거리낌 없이 이런 말을 하고 수도 없이 들었다. 그냥 다들 하는 말이다 보니 예의 없다거나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는다. 남편의 파견 근무 때문에 2년 간 한국에서 살았던 직장 동료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사람들은 참 솔직하다고(이 말도 passive aggressive였을까? 난 참 눈치도 없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피곤해서 열심히 공들여 화장을 하고 나갔더니 사람들이 대뜸 "무슨 일 있어요? 너무 피곤해 보이네."라고 하더란다. 나를 만나기 전 한국에서 몇 년간 살았던 우리 남편도 하루는 자기가 머리를 자르고 나갔더니 사람들이 "어, 머리 잘랐네. 근데 왜 그렇게 잘랐어? 전에 머리가 더 나은데."라고 했다며 차라리 말을 말지, 아쉬워했다.


문화도 생활습관도 다르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없다. 오늘도 여전히 passive aggressive의 정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동료를 보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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