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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Mar 02. 2023

배탈이 났을 때 뭘 먹어야 할까

뭐? 배가 아픈데 토스트를 먹으라고?


배가 아플 땐 굶어야 한다.

배가 아플 땐 죽을 먹어야 한다. 흰 쌀죽. 간장과 함께. 배탈이 아주 심하게 났다면 간장 없이.


나는 이렇게 배우고 자랐다.


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남편은 토스트를 먹으라고 한다. 버터도 바르지 않은 토스트.


생각만 해도 속이 불편하고 입이 까끌거린다. 속이 안 좋을 때 밀가루로 된 음식을 먹으면 안 좋다는 건 국룰인 줄 알았는데 서양인들에게는 다른 이야기인 모양이다.


남편은 어릴 때 배탈이 나면 엄마가 구워준 토스트 하나면 괜찮아졌다고 했다.




몇 년 전 뉴질랜드 병원에서 충수염 수술을 했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고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허리도 못 펼 정도여서 배탈이 된통 났구나, 생각하며 조퇴를 했다. 집에 와서도 일어나 있을 수가 없어서 오후 내내 누워있다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통증은 덜해졌으나 그 통증이 오른쪽 아랫배로 내려가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충수염 같아서 가정의를 찾아갔더니 바로 종합병원으로 가라며 소견서를 써준다. 피검사만으로는 알 수 없어 초음파를 보더니 충수염이 맞으니 항생제를 한 병 맞고 저녁에 수술을 하잔다.


그때 내게 든 생각은 아! 드디어 병원식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겠구나, 죽인가 빵인가, 였다.


간호사가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밀고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또 다른 복도를 지나갔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수술이 어떻게 진행될지 설명을 듣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산소 호흡기를 차고 산소 포화도 측정기를 검지 손가락에 끼고 주사를 맞으며 레드썬.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다. 푸르스름한 색 상하의를 입은 남자가 다가와 어떤지 묻고는 컵에 물을 담아 빨대를 꽂아 마시라며 가져다주었다.


오잉! 얼음물이다.


방금 수술하고 나왔는데 얼음물이라니 문.화.충.격.




정신이 좀 더 돌아오고 나서 병실로 데려다주었다. 뉴질랜드는 국가가 국민의 의료를 책임지는 형태라 크게 아파도 공짜로 치료받을 수 있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래도 충수염처럼 응급 수술이 필요하거나 암처럼 심각한 병이면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않아도 된다. 다만 뼈가 부러져서 응급실에 가도 생사가 오고 가는 일이 아니기에 몇 시간은 당연스레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약간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를 연상했는데 엄청 조용하고 병실도 이인실이었지만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다인실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마취 기운에 자고 일어나니 드.디.어. 아침을 준다. 두둥! 토스트와 오트밀 죽이 함께 나왔다. 급히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번엔 비겼다고.


방귀가 나왔는지 여부 따위는 확인조차 안 하고, 밥 먹고 나니 커피도 마시란다. 뭐지 이건?


아침을 먹고 잠시 후 의사가 회진을 돌더니 바로 퇴원하라고 하네. 조심할 거 있냐고 하니 없다고 붙여놓은 테이프만 5일 정도 있다가 떼면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수술이든 시술이든 하면 조심해야 할 게 아주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가 맞는 건지 아주 혼란스럽다. 그래도 뉴질랜드니 뉴질랜드 법을 따라 아무것도 조심하지 않으며 일주일간 병가를 즐겼다.


그래도, 여전히, 배가 아플 때 토스트는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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