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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Mar 28. 2023

또, 떨어졌다.

면접 실패기


작년 12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면접을 보는 동안엔 분위기가 꽤 좋았다고 생각했다. 면접 같지 않게 딱딱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이야기도 그럭저럭 끊기지 않고 흘러갔다. 면접관이 다 여자들이어서 그랬을까.


한국에서는 요즘 면접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뉴질랜드에선 거의 다 상황 면접이다.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에 맞춰 내가 과거에 어떤 문제를 맞닥뜨렸는지,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왔고, 거기서 내가 배운 점은 무엇이었으며, 만약 지금이라면 무엇을 달리 했을지, 등에 관해 대답하는 것이다.


10년 경력이 있기에 내놓을 예시는 충분하지만 여전히 '언어'라는 관문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면접을 볼 때 항상 '나는 긴장할 때면 억양이 더 세지니 혹시라도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면 언제든 내 말을 끊고 말해달라'라고 미리 말한다.




뉴질랜드에 와서 면접을 꽤 많이 봤다. 몇 개는 붙었고 아주 많이 떨어졌다.


내가 이민자이다 보니 주위에 이민자들이 많다. 하나 같이 어려운 시간을 겪어서 뉴질랜드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야기하려면 한두 시간으로는 부족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알바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일 년 넘게 일한 곳이 일본인이 경영하는 덮밥, 우동집이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시내에서 일하는 직장인이었고 오전에 장사를 시작해 점심 위주로 장사를 하고 오후에 문을 닫는 형식이었다.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성실히 일했지만 일을 하면서도 여기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다. 대부분 답조차 오지 않았고 몇 번 미안하다는 메일을 받았으며 면접의 기회는 딱 한 번 주어졌다. 수영장과 체육관이 함께 있는 레크리에이션 센터 잡무였는데 이조차도 면접 후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에서 필요할 때만 부르는 캐주얼 스태프로 일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부서에서 3개월 풀타임 계약직을 구해서 그곳으로 옮겨갔다. 대학 시스템을 전혀 모르던 나에게는 모든 게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규직 직원을 뽑을 준비 기간 동안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어서 당연히 나에게도 지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에 와서 보니 당시 내가 매니저 마음에 들었다면 포지션을 외부에 오픈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 기회가 주어졌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포지션 공고가 나오고 나서 나는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게 됐다.


세 명의 면접관을 앞에 두고 버벅거리며 면접을 보았다. 내 생애 첫 번째 갖춰진 영어 면접이었다. 다 아는 얼굴들이고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이어서 긴장은 했지만 그럭저럭 말을 이어갔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없어 매니저를 찾아가 물었다. 결정이 났느냐고. 그녀는 "Let me be honest with you"로 말을 시작해 다른 사람에게 오퍼가 나갔고 내가 다른 데 지원할 때 자기를 추천인으로 쓰라고 너그럽게 말해주었다.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나오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면접에 떨어졌다고 눈물이 난 적은 없었기에 아주 민망하고 볼썽사나웠다.


새 직원이 들어오고 나는 그녀를 환영하는 모닝티를 준비했다. 거기 가서 헤헤거릴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루하루 인수인계를 해주던 중 며칠 만에 그녀가 출근하지 않았다. 매니저가 나를 찾아와 그녀가 그만두었다며 아직도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면접에 떨어졌을 때 느낀 비참함을 생각하면 감사하지만 사양하겠다, 마다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으나 나에겐 갈 곳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그렇게 4년을 일했다. 다른 곳으로 옮겨 또 4년을 일하고 지금 직장에서 1년 반이 되어간다. 뉴질랜드 직업전선에서 10년 가까이 잔뼈가 굵었어도 면접은 여전히 큰 관문이다.


내 대답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면접관도 있었고 답이 질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는지 다시 다른 방식으로 질문한 면접관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보니 기대를 하고 또 실망을 한다. 어떨 땐 그냥 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그게 예의 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거절을 당하면 슬프다. 그래도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


여기 사람들이 메일을 보낼 때 오타가 많으면 그건 그냥 실수다. 우리가 오타를 내면 그건 몰라서다.

이런 생각은 매우 흔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더 잘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정도 같은 선상에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유리 천장은 여기에도 존재한다. 어느 조직이든 위로 갈수록 백인 남자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면접에 떨어지고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나라에 사는 동남아 사람 같은 입장이 아닐까, 하고. 그럭저럭 경력도 좀 있고 해서 면접을 봤는데 한국말을 하긴 하지만 발음도 이상하고 말을 좀 어색하게 한다. 그러면 면접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이 과연 이 동남아인이 한국 직원들을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할까?




사실 진짜 모르겠다. 면접에서 내가 부족했던 건 영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떨치기는 어렵다.


이런 식의 불만을 말하면 어떤 이들은 싫으면 너네 나라로 가,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내 자의식에서 나온 망상일 수도 있겠지만.


참 어렵다. 10년쯤 살면 쉬워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남의 나라에 살겠다고 왔으니 맞춰서 사는 수밖에. 


그래도 나보다 일 못하는 사람들이 말 잘해서 좋은 자리로 갈 땐 아! 진짜 짜증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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