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건 무섭지 않아. 안 죽고 아프기만 할까 봐... 그게 무서운 거지.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십여 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까지 모두 마쳤다. 5년 후에는 의학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전이와 재발의 두려움을 안고 산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엄마와 같은 고통을 나누었던 환우 여럿이 전이, 재발로 항암을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엄마는 암 환자였던 지인 중 어느 누구도 그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2020년 10월 뉴질랜드에서는 특별한 투표를 했다.
일반 선거였지만 여기에는 End of Life Choice Act의 통과 여부를 정하는 투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개인에게 '삶을 끝맺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느냐 마느냐를 묻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붙는다. 18세 이상이어야 할 것,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여야 할 것, 불치병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6개월 이내에 사망한다는 진단이 내려져야 할 것.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강조되는 사항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의학적으로 치유할 수 없는 상태'인가이다.
'안락사' 혹은 '존엄사’라고 불리는 조력 존엄사(assisted death)로 가장 유명한 나라는 스위스이다.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에서 주인공 ‘윌’이 죽음을 맞기 위해 선택한 것도 스위스였다. 스위스 외에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과 호주의 몇몇 주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꽤 많은 나라들이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스위스가 많이 거론되는 이유는 외국인에게 이를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나라가 이런 죽음을 법적으로 허용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이 법률의 정당성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이 법률의 도입이 인간의 마지막 품격을 지킬 수 있는 기회라고 두 팔 벌려 찬성하고 누군가는 인간 생명 존중 사상이나 종교 등에 근거해 소리 높여 반대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우려는 인간 생명이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생명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생에 남은 몇 개월 혹은 며칠을 가족도 친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고통받으며 생명만 연장하는 것이 맞냐고 묻는다면? 이 법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65.1%가 찬성해 2021년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