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 다르지 않나요?
'논바이너리(non-binary)'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육칠 년 전쯤이다. 직장에 새 직원이 하나 들어왔는데 그 사람을 소개하는 이메일에서였다.
이름은 '모건', 이름 만으로는 성별을 알 수 없는 중성적인 이름이었다. 이메일에는 그의 학력과 경력이 간략히 설명되어 있고 마지막에 이런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그는 논바이너리이니 he나 she가 아닌 they로 지칭해 달라고. 처음엔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 이런저런 얘기가 나돌았다.
그의 예전 이름은 대니얼, 성별은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건으로 논바이너리를 지향하고 있다.
겉모습만 보면 그는 영락없이 남자였다. 어깨도 넓고 몸도 두툼했다. 목소리도 걸걸한 편이었다. 하지만 가슴이 살짝 부풀어 있었다.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그와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고 가끔 지나가다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였다.
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동료는 그와 종종 일을 함께 해야 했다. 한 번은 학생이 찾아와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가 그를 he로 지칭하는 말을 우연히 듣고, 그가 매우 강압적이고 큰 소리로 그녀를 비난했다고 나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나보다는 어릴 때 뉴질랜드에 왔지만 그녀에게도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기에 어느 한 사람을 지칭하는데 they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건 이해가 갔다. I-my-me-mine, you-your-you-yours를 외우며 영어를 배운 나도 그렇고, 중국 사람들도 그런 실수를 쉽게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훨씬 더 그런 말에 민감하다. 그만큼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렇게 조심해도 그들은 쉽게 상처받는다.
한두 해가 지나자 모건은 더욱 여성스러워졌다. 머리가 길어졌고 긴치마를 즐겨 입었으며 화장도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여전히 they를 고수했지만 she로 불리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와 잠시 충돌했던 동료는 이제 그가 조금 여자처럼 보여 she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무슬림이고 성소수자를 많이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하지만 겉모습이 여자 같아서 이제는 she라고 할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가 조금 멀게 느껴졌다.
그 후로 더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 병원이나 관공서에서 작성하는 서류에 여성, 남성만이 아닌 논바이너리와 Other(기타)도 등장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이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힘이 들고 시간이 걸려서 우리는 항상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 인종차별도 역사가 길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얼마 전 우연히 예전에 알던 학생의 소식을 보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내가 아는 교수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그는 제임스라는 아주 흔한 이름을 가졌지만 성은 아주 특이했다. 하지만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제임스가 아니었고 난 호기심에 그의 페북을 클릭해 보았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밝은 색상의 원피스를 입고 환하게 웃는 그 사람은 제임스의 얼굴을 한 레베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