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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망 May 13. 2023

Tap Water vs 아리수

어떤 물 드세요?


뉴질랜드 사람들은 누구나 수돗물을 마신다. 아니, 집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있어서 수돗물이 아니고 빗물을 커다란 물탱크에 받아 쓴다거나 지하수를 뽑아 쓴다면 다른 이야기이다. 물론 마실 수는 있겠지만 안전하지는 않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의 경우 지하수를 끌어올려 소독을 해서 수돗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물을 받아 마셔도 상관은 없지만 미네랄이 많은 지하수는 소독 과정에서 물의 색깔이 푸르거나 검게 변하기도 한다. 아무리 마셔도 되는 물이라지만 색깔이 있는 물이 수도에서 나온다면 왠지 찝찝해서 먹기 싫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외에는 주방에서건 욕실에서건 그냥 수돗물을 받아먹으면 된다. 사람 마음이 이상하게도 꼭 주방 싱크대에서 물을 받아먹게 되긴 한다. 같은 수도관을 타고 들어온, 같은 물이 나오는 건데도 욕실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은 왠지 기분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물을 사 먹거나 정수기 물을 먹는 듯하다. 우리 부모님도 수년 전부터 정수기물을 먹었다. 밥 할 때도 국 끓일 때도 정수기 물로 한다.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한국의 수돗물 '아리수'를 마시라고, 마셔도 된다고 권장해 왔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수돗물을 먹는데 익숙한 나도 한국에 가면 물을 사 마시고 정수기 물을 마신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커다란 양은 주전자에 수돗물을 받아 볶은 보리를 한 줌 넣고 팔팔 끓인 보리차를 식혀서 플라스틱 물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곤 했다. 그게 우리 가족의 식수였다. 언제까지 보리차를 먹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차가운 보리차가 들어있던 냉장고는 어느새 '삼다수'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집에 정수기를 들일 때 우리 집도 정수기를 들여놓았다.


현재 나의 식수는 수돗물이다. 끓이지도 정수하지도 않은 그냥 수돗물. 직장에는 필터정수기가 있지만 우리 층에는 없기 때문에 정수기 물은 아주 가끔 마신다.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그냥 수돗물을 물병에 담아 가져다준다. 어쩌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생수(still water)를 줄까, 탄산수(sparkling water)를 줄까 묻는 경우가 있다. 물론 자체 정수기가 있고 탄산수도 만들어 주는 곳이 있긴 하지만, 그냥 시중에 유통되는 생수를 비싼 가격에 내놓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물을 돈 내고 먹고 싶지 않다면 이럴 땐 그냥 수돗물(tap water)을 달라고 하는 게 안전하다. 


수돗물도 향이나 맛이 다르지 않아서 예민한 사람들은 가려낼 수 있을지 몰라도 나같이 둔한 사람은 다른 점을 전혀 찾을 수 없다. 한국의 아리수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일상적으로 수돗물을 먹다 보니 수돗물 자체보다는 수도관에 의문이 생긴다. 특히 뉴질랜드처럼 오래된 집들이 많은 곳에서는 수도관 위생이 더 문제일 것 같다. 그래도 수도관이 깨끗한지 아님 썩어가는지 뜯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 그저 괜찮겠거니 할 뿐이다.


물을 많이 마시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한다. 나도 커피나 홍자를 자주 마셔 물을 잘 마시지 않는 편인데 일부러라도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요 며칠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엄마가 끓여준 따뜻한 보리차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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